잊혀진 '세상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

한겨레21 2022. 8. 2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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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로힝야 난민캠프 국경없는의사회 르포
만성화된 위기 속에 각종 질병과 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 인도적 관심은 줄어가
모자병원의 직원들은 저체중으로 태어난 아이를 위해 털모자를 떠줬다. 국경없는의사회(MSF) 제공
2017년 8월25일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족 집단학살을 자행한 뒤, 방글라데시에 있는 난민캠프는 로힝야 난민으로 넘쳐났다. 국제 인도주의 비정부기구인 국경없는의사회(MSF·Médecins Sans Frontières)는 1992년부터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에서 로힝야 난민 긴급구호 활동을 해왔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09년 설립된 쿠투팔롱병원을 포함해 현재 의료시설 총 8곳에서 감염병과 만성질환 그리고 정신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2022년 6월20일부터 7월4일 한국과 일본, 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하는 아시아 지역 국경없는의사회 인도주의 옹호(Advocacy) 담당자들이 방글라데시 난민캠프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방문기를 받아 싣는다. _편집자

“헤이 맨, 정말 뭔가 감개무량하지 않아?” 지도 위 쿠투팔롱병원을 가리키며 아룬이 제이슨에게 말을 걸었다. 두 사람은 각각 스리랑카와 미국 출신으로 국경없는의사회 현장활동가로서 살아온 삶이 10년을 훌쩍 넘어섰다. 이들은 2009년 쿠투팔롱병원 설립 초기에 콕스바자르에서 함께 활동했다. 이제는 단단하게 자리잡아 지역주민도 난민과 함께 이용하는 든든한 병원이 됐지만, 설립 초기에는 여러 고민과 난관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쿠투팔롱병원에 뜨거운 마음을 느끼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퉁불퉁하고 복잡하게 이어진 도로를 지나 쿠투팔롱병원으로 향했다.

조혼, 장래가 불투명하기에 이뤄진 선택

방글라데시에서는 금요일과 토요일이 휴일이다. 쿠투팔롱병원을 방문한 2022년 6월25일은 토요일이라 평소보다 환자가 적다고 하는데, 대기실과 진료실 등은 환자로 붐볐다. 특히 아기를 안은 부모와 조금 큰 아이가 많았는데, 여기저기서 서로 비슷하겠지만 또 다른 이유로 우는 아기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로힝야 사회는 문맹률이 높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문맹률이 70~80%에 이른다고 한다. 미얀마에서 오랜 세월 시민권이 없는 상태로 지내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간단한 접수를 하고 각자의 질병에 맞는 진료구역으로 찾아가는 일도 쉽지 않다. 병원 접수구역에선 고열(High Fever), 긴급(Emergency) 등이 쓰인 서로 다른 색깔로 코팅된 카드를 나눠주고, 환자들이 그 색깔을 따라 필요한 진료구역을 찾아가도록 안내했다.

접수구역 한구석에서 내 눈길을 끄는 부모가 있었다. 그들이 데리고 있는 이제 막 돌이 지났을 것 같은 남자아기는 어디가 불편한지 계속 목 놓아 울었다. 엄마와 아빠는 함께 쭈그리고 앉아 소변검사통을 들고 아기의 소변을 받으려 애썼다. 부모는 한눈에도 10대로 보였다. 아이가 아이를 데리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난민캠프에서 조혼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생각났다. 어린 자식에게 교육 기회가 거의 없고, 또 장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많은 로힝야 부모가 자식, 특히 딸의 조혼을 선택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조혼에 대해 관리·감독 기능을 하는 각 캠프관리사무소(CiC)에서 벌금을 가하는 등 공적인 제재가 있기는 하지만, 난민캠프 곳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조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듯했다.

철책에 막혀 임산부 위험에 빠지기도

나이지리아 출신의 현장 책임자 써니를 따라 들어간 고얄마라 모자병원 응급실. 문 앞 병상에서 대여섯 살밖에 안 돼 보이는 소녀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헐떡였다. 뇌전증이 있어 가끔 병원 신세를 지는 아이는 생명에 지장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옆의 병상에 어디서 굴러 떨어져서 생긴 듯한 머리의 큰 상처 때문에 붕대를 감은 아이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입원실 쪽으로 가보니, 아픈 아이들이 병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잠들었거나 통증으로 신음하는 아이들 사이에 모기장 너머 수줍은 웃음으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한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필리핀에서 온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인 빈스가 “뎅기열에 걸렸는데, 엊그제까지는 꽤 아파하더니 이제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앉아 있는 것 같다”고 말해줬다.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뎅기열은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시기에 따라 유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슬람에서 중요한 명절인 ‘이드 알아드하’(Eid al-Adha)를 앞두고 다카에서 콕스바자르 사이의 인구이동이 빈번해지면서 콕스바자르에도 유행하는 일이 생겼다.

이 모자병원의 신생아실에서 여러 색깔이 섞인 털실로 만든 모자를 쓴 쌍둥이를 만났다. 일본에서 온 동료 요시노가 옆에 서 있는 현장활동가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보더니 웃으면서 “저 털모자는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직접 만들어서 선물한 것”이라고 전해줬다. 1㎏ 남짓 저체중으로 미숙하게 태어난 쌍둥이는 이제 퇴원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게 자랐고, 덕분에 함께 회복하는 엄마의 얼굴도 평온해 보였다.

콕스바자르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서비스를 통해 2021년 기준 약 5천 건의 분만이 이뤄졌다. 미숙아로 태어난 쌍둥이들의 엄마가 제때 분만서비스가 있는 의료시설을 찾아낸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난민캠프 내 하위 지역 간에는 2019년부터 철책이 설치돼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분만을 앞둔 산모를 포함한 여러 환자가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해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일도 있었다.

로힝야 활동가가 ‘인도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MSF) 제공

완치됐다가 다시 걸리는 옴진드기

6월26일, 방글라데시에서는 한 주가 시작되는 일요일 오전, 대부분의 캠프가 모인 메가캠프 구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캠프 14-16 지역에 도착했다. 하얀 철문 너머 대나무를 엮어 만든 지붕과 기둥을 따라 대기실이나 처치실 등이 양쪽으로 길게 이어진 잠톨리 진료소에 들어섰다.

환자들이 빼곡히 들어찬 혼잡한 공간에 서서 큰 소리로 열심히 설명을 이어가는 보건증진(Health Promotion) 활동가들이 눈에 들어왔다. 손에 든 스케치북 모양의 자료에는 옴진드기 피부병 증상으로 생기는 수포의 색깔과 모양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담겼다.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20개의 소외열대질환 중 하나인 옴은 기생충성 피부질환으로, 진드기가 사람 피부에 기생해 알을 낳으면서 배출하는 분비물로 인해 극심한 가려움이 생기는 병이다. 전염성이 매우 강해서 인구밀도가 높은 난민캠프에선 가족 간의 접촉으로 쉽게 전염되고, 심하면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잠톨리 진료소에선 최근 옴진드기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기생충을 통해 걸리는 병이라 면역이 되지 않아서 완치된 사람들이 다시 걸려서 돌아오는 일이 많다.

옴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서는 개인위생과 의류·침구류 세탁이 중요한데, 난민캠프 안에서는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 또 로힝야 사람들에게는 아직 옴 증상이 낯설어서 방치하고 있다가 적절한 시기에 치료받지 못하기도 했다. 결국 보건의료 문제는 보건의료적 처치만으로 해결할 수 없고, 물과 같은 필수 자원을 공급하는 것, 나아가 보건위생 정보의 전달과 이해를 돕는 교육과도 연계된 셈이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에게 이 질병의 예방 방법과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 보건증진 활동가들이 병원 안팎과 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후바입은 이제 20대 초반인 로힝야 청년이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로힝야 난민의 실태를 전하는 일을 한다. 방문단을 맞이한 그는 난민캠프에서 당면한 고민과 교육의 부재로 인한 어려움을 로힝야 언어로 열심히 발표했다. 그 내용을 함께 일하는 국경없는의사회 동료가 영어로 통역해줬다. 후바입의 발언을 직접적으로 알아들을 길은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와 표정에는 당당함과 절실함이 교차했다.

한참 발표를 이어가던 후바입이 어느 순간 목이 메어 갑자기 발표를 멈추고 입술을 깨물며 터져 나오는 흐느낌을 참아내려 애썼다. 5년 전, 그는 미얀마에서 학교를 다니던 10대 소년이었고, 변호사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로힝야 난민캠프에선 그가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 대규모 난민이 유입된 지 5년이 지난 현재 로힝야 난민의 위기는 점차 만성화되는 단계로 넘어가 보건의료, 식수위생, 교육 그리고 이동의 자유 등 전반에서 겪는 문제가 누적되고 있다. 후바입은 흐느낌을 참아내고 잠시 멈췄던 발표를 이어갔다. “유엔에서 말하는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The most persecuted minority in the world)이라는 타이틀을 걷어내고 나아가고 싶다.”

그런 후바입을 옆에서 담담히 지켜보는 사나는 미얀마에서도 국경없는의사회와 10년 넘는 세월 동안 일했고, 콕스바자르에 피란을 나온 뒤 다시 그 인연을 이어가는 로힝야 어르신이었다. 우리 방문단에 혹시 질문이 있냐고 묻자, 사나는 “우리는 이미 질문을 전했다”고 말했다. 난민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이 바로 그들이 던지고 있는 ‘질문’이라는 우문현답이었다.

고얄마라 모자병원 병상을 아픈 아이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국경없는의사회(MSF) 제공

사나에게 가져갈 응답은

최대 규모의 난민이 유입된 2017년의 엑소더스 이후, 방글라데시 정부와 유엔을 중심으로 전세계 다양한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가 참여하는 난민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보건·교육·식수 등 분야별 서비스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7년 8월25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최근 불거진 아프가니스탄의 상황과 그에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 곳곳의 인도적 위기 상황이 악화하면서 로힝야 난민의 삶은 인도적 위기의 중앙무대에서 잊히고 이들을 계속 지원할 수 있는 관심과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최근 로힝야 난민을 위해 오랜 세월을 보낸 선배 활동가는 말했다. “인도주의란 타인의 안위를 위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다.” 로힝야 사람들의 삶에 개입한 우리가 앞으로 가져야 하는 책임, 또 후바입과 사나에게 가져갈 응답은 무엇일까.

콕스바자르(방글라데시)=김태은 국경없는의사회(MSF) 인도적 지원 총괄 협력관
tae-eun.kim@seoul.msf.org

33개 하위 구역 내에 100만여 명 생활

세계 최대 규모 난민캠프가 된 휴양지2017년 8월25일,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댄 미얀마의 라카인주에서 로힝야 주민을 표적으로 하는 미얀마군의 거대하고 조직적인 탄압작전이 시작됐다. 로힝야구원군(Arakan Rohingya Salvation Army)으로 알려진 무장단체가 30여 곳의 미얀마 경찰 초소를 공격한 직후 약 1개월 동안 이어진 이 사태로, 수많은 로힝야 마을이 불타고 6700여 명이 숨졌다. 이 중 약 730명은 5살 이하 어린이였다. 그 1개월 동안 외신이 보도하는 피란민 수는 수천 명에서 수만 명으로 하루하루 급격하게 늘어났다. 결국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추산하는 숫자로 70만 명이 넘는 로힝야 사람들이 살해와 성폭행 등의 폭력을 피해, 충격과 공포 속에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로 탈출했다.

미얀마에서 이슬람 및 벵골계 소수민족인 로힝야 사람들이 공식적인 박해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콕스바자르에는 이미 2017년 이전에 피란을 나온 로힝야 난민 20여만 명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엑소더스 당시 대규모로 입국한 인구와 더불어 총 90여만 명이 난민생활을 하게 됐다. 2019년 기준 유엔난민기구는 약 92만 명의 로힝야 난민이 이 지역에 있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이후에 있었던 인구이동과 새로 출생한 수를 고려하면 100만 명 이상이 총 33개의 하위 구역으로 나뉜 거대한 난민캠프 지역에서 생활한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방글라데시는 2026년 최빈국 지위에서 졸업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저소득국가로 개발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콕스바자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 덕분에 본래는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지금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난민캠프가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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