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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한국과 몽골, 그 천년의 비밀을 찾아서 (2)

본문

동호는 동이   

이제 보다 근본적으로 몽골이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동호(東胡)와 한국인들로 일반적으로 지칭되는 동이(東夷)와의 관련성을 검토해 보자. 동호계(東胡系)는 주로 쉬[奚(해) : 현재의 내몽골 지역], 쉬웨이[室韋(실위) : 현재의 몽골 지역) 등인데, 이 가운데서 쉬[해(奚)]는 거란(契丹)이 되고 쉬웨이[실위(室韋)]가 바로 몽골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동호(東胡)는 일반적인 한반도 사람들을 의미하는 동이(東夷)와도 다르지 않다. 이 점을 구체적으로 보자.(주27) 

첫째, 동호라는 말은 역사서에 잠깐 나온 말로 동북방의 오랑캐를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말에 불과한데 이것을 대부분의 사가들이 특정 민족의 이름으로 받아들여 역사 연구에 혼란이 왔다. 즉 동호(東胡)란 동이(東夷)라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 동호라는 말은 <일주서(逸周書)>, <산해경(山海經)>등의 책에 보이기는 하나 신뢰하기 어렵고, 사서에는 <사기(史記)>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말로 "연나라 장수인 진개(秦開)가 동호(東胡)를 기습하여 공격하니 동호는 1천여 리의 땅이 빼앗기고 말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같은 사건을 <삼국지>에서는 <위략(魏略)>을 인용하여 동호 대신에 조선(朝鮮)이 들어가 있다. 즉 동호 = 조선(고조선)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사기>에 "동호는 오환(烏桓)의 선조이며 후에 선비(鮮卑)가 되었다. (동호는) 흉노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동호라고 하였다."라고 한다.(주28) 즉 흉노 동쪽의 광대한 부족을 통칭하여 동호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동호는 고조선의 구성 민족인 예맥과도 차이가 없어진다. 춘추시대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들에는 동호라는 이름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춘추전국 시대에는 예맥(濊貊) 또는 맥(貊)이 중국 동북의 민족들로 인식되었다. 예를 들면, <순자(荀子)>에는 전국시대에 흉노를 호(胡) 그 동쪽에 있는 민족을 맥(貊)으로 보고 있고 이 기록은 자주 등장한다. <순자(荀子)>에 "진(秦)나라 북쪽으로는 호(胡)와 맥(貊)이 접하고 있다."고 하는 기록과  <사기>의 진(秦)의 승상 이사(李斯)의 글에 "저는 북으로는 호맥(胡貊)을 쫓고 남으로는 백월(百越)을 평정하여 진나라를 강대하게 만들었습니다."라는 기록 등이 있다.(주29)

둘째,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예맥의 대표적인 나라인 고구려나 고조선의 중심지가 사서에 나타나는 동호의 중심 지역과 일치하고, 고조선의 주요 유물이나 유적(비파형 동검 등)이 동호 지역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동호의 후예로 알려진 요나라의 중심지역이 과거 조선의 영역이었다거나 고조선과 같이 팔조범금(八條犯禁) 관습과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거나 동호의 모용황(慕容皝, 297~348)이 조선공(조선왕)에 봉해졌다는 사실 등을 들 수 있다.  

넷째, 동호(東胡)에서 사용되는 호(胡)라는 말이 예맥을 지칭하는 고구려나 고조선을 나타내는 말로도 혼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한서(漢書)>에는  "유주(幽州 : 현재의 베이징 인근)를 조선호(朝鮮胡)들의 나라이고 고구려(高句驪)현은 구려호(句驪胡)."라고 하였다. 즉 고구려와 조선을 호[胡]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이 호(胡)라는 말이 한국인들의 범칭으로 쓰인 예는 매우 많다. 수많은 사례들을 보면 호(胡)라는 개념은 동북방에 있는 광범위한 사람들의 총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주30)     

다섯째, 중원에 위협을 주는 존재로 예맥은 동호의 대표 민족인 오환(烏桓)․선비(鮮卑)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있다. 즉 예맥(濊貊)이라는 말이 <한서(漢書)>에서는 거의 사라지면서 오환과 선비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예맥은 <삼국지(三國志)>에서는 드물게 보이다가 <진서(晋書)>에서는 완전히 사라지고 이후에는 고구려, 부여, 선비 등의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즉 일반적인 한국인을 의미하는 맥(貊) 또는 예맥(濊貊)이라는 말은 진(秦)나라 이전의 문헌에서는 동북방의 이민족을 부르는 보편적인 명칭인데, 이 명칭이 한나라를 지나면서 거의 사라지고 동호(東胡)나 동이(東夷)라는 말로 바뀌었다. 즉 이전에 동북방의 오랑캐로 불리던 예맥이 위진남북조 시대에서는 소멸되면서 오환․선비 등과 구체적인 나라 이름(예를 들면, 고구려․부여․동예) 등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맥(貊)은 <시경(詩經)> 등의 중국의 대표적인 고대 전적에서 야만족의 대표적인 종족으로 묘사되어왔다. 이를 종합하여 <상서(尙書)>는 "북방을 일컬어 맥(貊)이라고 한다."라고 결론지었다.  

<전국책(戰國策)>에는 "동호는 오환의 선조인데 후에 선비가 되었다. 흉노의 동쪽에 있어서 동호라고 불렀다. (중국 고대 인문지리서인) <괄지지(括地志)>에서 말하기를 동호는 한나라 초기에 모돈 선우가 이를 멸하였고, 그 남은 사람들이 오환산으로 들어가 오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라고 하고 있다. 이 기록은 연나라와 동호가 남북으로 서로 인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흉노의 동쪽'이라고 하는 표현은 특정한 민족으로서의 동호를 의미한다기보다는 동북지역의 포괄적인 오랑캐 즉 동이(東夷)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기>에는 연나라 문후(燕文侯)의 말을 인용하여 "연나라 동쪽에는 조선과 요동이 있다."라고 한다.(주31) 이 기록은 대체로 다른 기록들과 일치하는데 이 기록에서는 동호가 아예 나타나지 않고 동호의 지역에 조선이 나타나고 있다. <산해경>에서도 "맥국은 한수(漢水)의 동북에 있으며 그 땅은 연나라와 가깝다."라고 하여 연나라와 대치한 나라가 맥국(貊國)이고 이 나라가 고조선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주32)  

결론적으로 동호와 동이, 예맥과 동호(오환․선비) 등은 서로 다른 말이라기보다는 시기적으로 달리 나타난 용어에 불과하고 한국인들을 의미하는 예맥이라는 말이 사라지면서 오환․선비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의 석학 뤼이푸(芮逸夫) 선생은 <삼국지>와 <후한서>를 분석한 후 중국 대륙의 동부에 거주했던 모든 민족은 동일한 기원을 갖고 있다고 결론지었다.(주33) 뤼이푸(芮逸夫) 선생의 견해가 중요한 것은 중국이 역사적 영토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 있기 전에 객관적으로 판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호와 고조선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는 국가는 연나라인데 고조선과 동호는 연나라의 북쪽에 있었고 그 위치가 서로 일치하고 있다. 나아가 관련 기록들이 동호와 고조선(또는 예맥)을 서로 혼용하고 있어 '동호=고조선' 임을 알 수 있다.    


고조선은 북방 역사의 호수, 멸망 후 고구려부, 선비오환부로 분리   

초기의 고조선에 대한 기록들이 거의 없지만 일부 선진(先秦) 문헌들과 <삼국지>, <사기> 등을 토대로 보면, 고조선은 춘추전국 시대에는 연나라와 겨루는 강국이었고 BC 4세기경에는 보다 독립적인 고대국가를 형성하여 연나라와의 대치했으며 연나라의 공격으로 국력의 소모가 있었고 BC 3세기 말에는 진(秦)나라와 화평을 유지하면서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주34)(참고로 고조선이라는 말은 원래 없고 이성계의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편의상 고조선이라고 사용하고 있다).  

BC 108년 고조선이 멸망하자 고조선 지역과 인근 사람들은 거대한 유민(流民)이 되어 떠돌다가, 한 갈래는 고구려를 건설하였고 다른 한 갈래는 일정한 국체를 이루지 못하고 선비(鮮卑)라는 이름으로 잡거(雜居)하였다. 크게 보면 고조선 후예들은 고구려부(高句麗部)와 선비오환부(鮮卑烏桓部)로 나뉜다. 고구려는 고조선 멸망 이후 국가체제를 건설하였고 나머지 유민들은 국가 형태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선비나 오환 등으로 불리며 할거하였다. 선비족은 뚜렷한 근거가 있는 말이 아니고, 그저 선비산 근처에 살던 사람이라는 의미로 계통적으로 보면, 고조선 지역의 북서부에 주로 거주하던 사람들이다.  


몽골은 바로 이 선비오환부에서 파생된 민족  

선비오환부는 다시 지역에 따라 모용부(慕容部), 탁발부(拓拔部), 우문부(宇文部), 단부(段部) 등으로 나뉘는데, 서기 46년을 전후해 만주 몽골 일대가 메뚜기 습격으로 수천리가 붉게 변하고 초목이 말라죽어 황무지가 되는 등 천재지변으로 흉노가 약화되자, 선비오환은 오르도스(현재 내몽골 바우터우 인근) 일대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고조선과 만주, 몽골은 2세기경 선비족을 중심으로 재통합되는데, 이때의 영웅이 바로 단석괴(檀石槐 : [텡스궤이?])이고 그는 칭키스칸만큼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여기서 유념할 점은 단석괴는 한국 건국 신화의 원형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유일한 증거가 되는 분이다. 즉 '햇빛에 의한 회임'과 관련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실존 인물은 기록상 선비족의 영웅 단석괴(檀石槐)가 유일하다. 단석괴의 탄생과 성장과정은 동명성왕과 유화부인 이야기의 원형이다. 고구려 건국 신화는 4∼5세기 정비된 것인데, 고주몽을 단석괴와 동일시하고 있다.   

단석괴의 사후 2세기 말 이 지역은 일시적으로 약화되었다가 4세기경에 선비족은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한다. 즉 <진서(晋書)>에 "모용외(慕容廆, 269 ~333)가 조선공(朝鮮公 : 조선왕)이 되었고 이를 모용황(慕容皝)이 계승하였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지만 조선의 이름이 고구려 아닌 모용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은 고조선이 멸망 450여년 만에 더욱 강력하게 부활한 것을 의미한다. 조선왕 모용황은 기존의 고조선 영역뿐만 아니라 훨씬 더 남하해 북중국 주요부를 대부분 장악하고 중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국호를 연(燕, 전국시대 연과는 다름)이라고 하였다. 모용씨 세력이 약화된 뒤, 역시 고조선의 후예인 탁발씨(拓拔氏)가 대두하여 건설한 국가는 북위(北魏 : 386∼534)다. 북위와 고구려는 때로는 결혼으로 연합하면서 때로는 서로 경쟁하면서 성장하였다.  

10세기 번성했던 거란(요나라 중심세력)은 우문부의 후예다. 우문부는 모용부에 의해 궤멸된 후 남은 사람들로 후에 거란으로 불렸다. <요사(遼史)>는 요나라의 발상지가 요택(遼澤)이라고 하는데 이 요택(요하의 삼각주 유역)은 대릉하~요하 유역의 세계 최대 습지로 전국시대에는 고조선 땅이었고 고구려의 건국지에 속하는 곳이었다.(주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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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후예들과 몽골의 기원(몽골은 계통적으로 우문부의 후손). ⓒ김운회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보면, 몽골의 원류였던 동호(東胡)는 한국인들의 뿌리인 동이(東夷)와 별 차이가 없는 말이다. 결국 몽골과 한국의 친연성은 역사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몽골인들은 몽골의 한 부족이 한반도로 내려갔다고 믿고 있었으며 칭기즈칸은 솔롱고스(한국)의 피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서 왜 몽골이 "성질이 급한 몽골인답지 않게" 긴 시간 동안 인내하면서 고려를 품에 안으려고 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몽골인들은 한국인을 외국인이 아니라 오래전 흩어진 형제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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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

Marauder님의 댓글

의외로 오래된글이었군요. 옛날에 봤던걸 잊어버렸을 수도 있겠네요. 요즘은 어찌보는지 궁금하군요.

축하합니다. 첫댓글 포인트 1GOLD를 획득하였습니다.

무쿠리님의 댓글

본문에서

"선비오환부는 다시 지역에 따라 모용부(慕容部), 탁발부(拓拔部), 우문부(宇文部), 단부(段部) 등으로 나뉘는데, 서기 46년을 전후해 만주 몽골 일대가 메뚜기 습격으로 수천리가 붉게 변하고 초목이 말라죽어 황무지가 되는 등 천재지변으로 흉노가 약화되자, 선비오환은 오르도스(현재 내몽골 바우터우 인근) 일대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이거 사실이 아닙니다

서기 46년은
오환이 후한(동한)에 의해 요서-요동-어양 등 중국 북변 내지로
이주된 시기입니다

또한 흉노의 내분으로 흉노가 남흉노와 북흉노로 분열되던 때이며
오환은 본래 흉노 좌현왕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이 좌현왕이 후한의 도움을 받아서 남흉노를 성립시킨 것입니다

오환이 남쪽으로 대거 이동함에 따라서 현 시라무룬허 유역에 있던 선비족이 남하하여 중국과 역사상 최초로 통교합니다

당시 중국은 남흉노와 오환을 이용하여 북흉노를 방비하였는데
이 중국 내지로 들어와 있는 오환을 견제하고자 선비족을 이용하였습니다

선비족이 흉노의 초원지역을 차지하게 된 것은
이보다 후대의 일로
북흉노가 괴멸됨에 따라 어부지리로 그 빈 땅까지 영역을 넓힌 것입니다

무쿠리님의 댓글의 댓글

내용 정정 및 부연

서기 46년은 오환이 후한의 지원을 받아서 북흉노를 격파하여 패주 시킨 해입니다
- 북흉노의 패주에 대해서 후한서 오환전에서는 오환의 공으로, 흉노전에서는 남흉노의 공으로 적고 있으나
- 이 시기에 흉노가 분열하여 남흉노와 오환이 후한에 부용하게 되었으므로
- 어느 한쪽이 아니라 남흉노와 오환의 공동작전에 따른 패주로 봐야 합리적입니다

서기 46년에 흉노지역에 기아, 역병, 가뭄, 곤충의 피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는 그 46년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흉노의 후계 문제 갈등이 있던 그 사이 "해마다"라고 후한서 흉노전은 적고 있음

내부의 갈등과 몇 해에 걸친 기근을 겪자 흉노는 한나라가 공격해올까봐 한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청했는데
이 때에 선우 승계에서 제외된 우욱건일축왕 비(比) - 훗날 남흉노 가한 -가 한나라에 흉노지도를 바쳤습니다

이 때가 서기 46년입니다.

선비족이 중국 역사에 최초로 등장한 때는 서기 45년, 흉노와 함께 한나라 요동을 침략하면서이고
중국과 최초로 수교한 때는 서기 49년에 한나라와 선비족 거주지 사이에 존재하고 있던 오환이 한나라의 국경 안으로 대거 이주함에 따라
선비족과 한나라 사이에 길이 트이면서입니다

선비족이 흉노지역의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은 서기 1세기 후반의 일로, 후한이 북흉노를 격퇴하여 땅이 비게 되면서
어부지리로 얻게 된 것입니다

오환은 이미 중국 내지로 들어가 있어서 중국 북쪽 국경 밖에는 북흉노와 선비족이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선비족이 그 빈 땅으로 터전을 넓힌 것입니다

"후한 화제 영원(永元) 년간(89~104) 중엽에 대장군 두헌(竇憲)이 우교위(右校尉) 경기(耿夔)를 파견하여 흉노를 공격하여 격파하니 북흉노의 선우(單于]가 도망갔는데 선비족이 이를 틈타 북흉노의 땅으로 옮겨갔다. 그 땅에 남아 있던 흉노의 여종(餘種)이 여전히 10여 만 락이나 되었는데, 모두 스스로 선비라고 칭하게 되니 선비는 이로 말미암아 점차로 강성해졌다. "《후한서 선비전》

범고래님의 댓글

내용이 전반적으로 비약이 심한 듯... 칭기즈 칸이 한국의 피를 가지고 있었다는 근거가...

그리고 몽골이 우리를 품에 안으려고 그렇게 고려를 괴롭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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