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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하, 고조선문명의 사회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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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작가의 책에서 소개 받은 신용하 교수의 책을 읽었습니다. 생각해 볼 내용이 많아서 관심 있는 주제만 간단히 요약하고 제 의견을 보탭니다.


. 호모 사피엔스 출현 : 20만년전

. 20만년전~5만년전까지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동부 해안에서 지구 전체로 이동 (호모 사파엔스 사피엔스 출현 : 5만년전)

. 최후의 빙기 : 5만3천년전~1만3천년전. 북위 40도 이상은 동토지대가 되고, 이 지역의 구석기인은 사멸 또는 남하. 동아시아의 경우 동굴지형이 많은 한반도로 이동. 

. 동아시아 해안선의 변동 : 2만년전~1만5천년전에 서해는 육지, 일본은 분리. 해안을 따라 아시아로 이동한 사피엔스의 주요 정착지는 한반도. 최후의 빙기가 끝난 후 1만2천년~7천년전에 서해가 바다로 침수됨

. 1만2천년전~5천년전 동아시아 신석기시대 농업혁명: 단립벼 최초 재배, 콩 최초 재배

. 5천1백년전~3,600년전 청동기 문화 형성 (고조선문명)

. BC 30C~BC 24C 고대국가 고조선 성립. 고조선어는 우랄어족/알타이어족의 조상언어

. 한/맥/예의 기원 : 지구 온난화 후 고한반도에 남아 정착한 '한'족, 9천년전~6천년전에 북위 40도선 서북방으로 이동한 '맥'족, 북위 40도선 이북의 요동지역에 이동 정착한 '예'족. 즉, 빙하기를 한반도에서 지낸 신석기인들이 한,맥,예로 분리됨

. 한족의 한강문화 : 단립벼 재배 성공과 동아시아 전체로 전파. 새 토템, 천손의식, 뾰족밑 빛살무늬 토기, 부계사회, 존대어, 십진법과 자, 큰 활과 석검, 고인돌/선돌/비석 문화, BC31세기 청동기 등장

. 맥족의 홍산문화 : 여신 숭배, 모계 사회, 곰 토템, 옥 문화, 기장/조 농경 시작, 돼지 사육, 납작밑 빛살무늬 토기, 적석총/고인돌, 기후 건조화로 BC 3,000년 남방(요동반도/한반도북부)으로 이동.

. 예족의 요하문화 : 범 토템, 농경과 가축 사육, 개 사육, 부계 공동체, 납작밑 빛살무늬 토기, 옥장식, 철광석

. 고조선 건국 : 한/맥/예 3부족의 연맹에 의한 고조선 건국. 본국과 후국으로 구성.

. 후국의 종류 : 제1유형-부여,진국,고죽,옥저,청구,불령지,불도하,맥/예,동호,오환,선비,고막해,양맥,구려,비류,개마,구다,행인,진반,임둔. 제2유형-읍루,산융,유연,정령,오손,실위 

. 산동반도와 중국 동해안 지역은 고조선문명의 영향권

. BC 12세기부터 철기 시작

. 고조선의 기마문화의 형성과 발전 : 부여에서 시작. 농경문화에서 가축화 후 유목문화로 전파. 최종적으로 유목기마문화=기마민족 탄생에 기여.

. 고조선-고중국의 국경은 영정하였으나 만리장성 축조 후 난하로 이동.

. 위만이 후조선 준왕에 반역하여 본국 장악. 한무제의 침략과 위만조선의 멸망. 열국시대 개막



구석기/신석기 시대까지 다루는 방대한 스케일에 놀랐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기원을 추적하다보면 결국 아프리카까지 가야하니 한번은 공부해야 할 주제이긴 한데, 깔끔하게 정리해 두셨네요. 최후의 빙기에 한반도가 동아시아의 방주 역할을 했다니 지금은 바다가 된 서해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네요. 발굴이 된다면 좋을텐데...


한/예/맥은 한반도 기원의 하나의 민족이었다는 추정과 고조선의 건국이 한/예/맥의 결합이었다는 추정은 모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언어 측면을 봐도 그렇고... '진국'에 대한 주장은 제가 생각하는 바와 좀 다르지만, '한'이 중심이었고 나중에 다시 맥/예와 통합되었다는 주장은 그동안 제가 생각해 온 의견과 일맥상통하네요.


그러고 보니 한군현이 요동이냐, 평양이냐는 민족사 전체의 흐름에서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네요. 5천년 역사의 흐름에서 잠시 일어난 파문일 뿐...  기록이 없으니 역사학이 아닌 고고학과 기타 학문으로 고조선을 복원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여집니다.


신용하+윤내현+김상. 이분들의 가설로 우리 민족 역사의 큰 뼈대는 복원 가능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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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2

울티마툴레ultimatule님의 댓글

1.
신용하+윤내현+김상. 이분들의 가설로 우리 민족 역사의 큰 뼈대는 복원 가능한 듯.
→ 이 부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전 환빠들이 배제된(그러나 환단고기는 참고가능한) 고대사 복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점에서 김상님도 기원전1세기부터 기원후6세기까지의 통사쪽으로 저작이 있었으면 합니다.

축하합니다. 첫댓글 포인트 1GOLD를 획득하였습니다.

울티마툴레ultimatule님의 댓글

2.
한사군의 위치는 위만조선의 위치와 단군조선의 위치를 결정하는 문제고 고고학적 유적유물을 판단하는 기준이라 반드시 결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나 한사군이 설치된 시대는 역사가 서술된 시기이기에 문헌자료와 고고학적자료가 같이 검토되어야하겠죠.
그런점에서 윤내현교수가 1982년 논문에서 검토한바와같은 낙랑유적유물에 대한 재겅토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현재까지 낙랑유적은 기원후1세기를 넘는게 없고 낙랑유물은 기원전 것들이 부분적으로 있다고 합니다. 유물연대보다는 유물이 묻혀있는 유적의 연대가 훨씬 중요하기에 북한과의 공동연구가 절실합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진실을 찾는 과정이 필요한 점은 동의합니다. 여러 사료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전 한군현 요동설을 지지하고요.

다만 긴 역사의 흐름에서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

울티마툴레ultimatule님의 댓글

3. 민족구성문제는 한 예 맥의 혼합이라는 가설에 동조합니다. 다만 민족이란 단어가 유럽에서 18세기까지 유지되어오던 ○○제국들이 19세기 20세기초반까지 분열되며 각기 독립한 족속들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만든 개념이므로 우리가 쓰는 개념과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신용하교수님이 원래 사회학자출신이라 잘 적용하셨을거라고 봅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그러게요... 전 공부가 짧아서 오스트리아 민족이 있는건지 게르만족으로 퉁치는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나저나 고조선 2유형 후국들의 면면을 보면 좀 애매합니다. ㅋㅋ

무쿠리님의 댓글

. 최후의 빙기 : 5만3천년전~1만3천년전. 북위 40도 이상은 동토지대가 되고, 이 지역의 구석기인은 사멸 또는 남하. 동아시아의 경우 동굴지형이 많은 한반도로 이동.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이들 구석기인들이 사멸하거나 남하한 것만은 아닙니다

베링해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오고 간 인류이동이 그 시기에 있었으니까요 (아메리카 인종의 기원은 다자기원설로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우리를 포함한 동북아 황인종의 신체적, 유전적 특성이 혹한기후에 적응하며 나타난 것이니까요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네. 맞습니다.

다만 중요한 점은 그 시기에 북위 40도 이상의 동북아가 사람살기 어려운 곳이 됐다는 점이죠.

무쿠리님의 댓글

. 동아시아 해안선의 변동 : 2만년전~1만5천년전에 서해는 육지, 일본은 분리. 해안을 따라 아시아로 이동한 사피엔스의 주요 정착지는 한반도. 최후의 빙기가 끝난 후 1만2천년~7천년전에 서해가 바다로 침수됨



서해가 육지가 되고 열도와 한반도 사이가 바다가 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 ~ 6천 년 전 사이입니다

즉 최종 빙기가 끝나고 바로 바다가 된 것이 아닙니다

최종 빙기 때에 현 동해는 거대 내해였고 열도는 연결돼 있었으며 서해로부터 오키나와 열도의 서쪽을 따라 이른 바 순다랜드로 불리는 당시 뭍이었던 동남아까지 뭍이었습니다

무쿠리님의 댓글

또한 서해가 바다가 되면서 뭍이었을 당시에 그곳에 살았을 것으로 고려되는 고인류가 곧바로 한반도에 이주해 정착했다거나 그 이주 인구가 대단위였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1만 2천 년 전후 ~ 8천 년 전후의 유적과 유물이
한반도에서 극히 희소한 까닭입니다

이를 두고 고고학계에서는 4천 년의 공백이라고 말하더군요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저도 그 당시의 신석기인 공동체가 서해 (당시 큰강)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동아시아판 아틀란티스 대륙?).

다만 바닷속일 뿐 아니라, 서해를 둘러싼 각종 큰강에서 나온 퇴적물까지 감안해보면 바다 땅속 깊숙이 수장되어 있겠네요.

무쿠리님의 댓글의 댓글

전에 동아게에도 몇 차례 올린 바 있는데요 거대한 두세 개의 강줄기가 뭍이었던 서해를 종단하여서 오키나와 열도 북쪽에서 바다로 들어갔더군요

무쿠리님의 댓글

. 1만2천년전~5천년전 동아시아 신석기시대 농업혁명: 단립벼 최초 재배, 콩 최초 재배



재배와 순화는 다릅니다

재배는 말그대로 농사를 짓는 것이고
순화는 야생의 곡물 등을 길들여 식용하기 시작한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 역사터전에서 가장 오래된 '순화단계'는
6천여 년 전 현 시라무룬허 유역입니다

무쿠리님의 댓글

. BC 30C~BC 24C 고대국가 고조선 성립. 고조선어는 우랄어족/알타이어족의 조상언어



이는 저 역시 지난 몇 년 동안 지속 탐구해오고 있는 주제인데 일부 사실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 분파 시기는 요-금 시기까지의 언어집단 이동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또한
한 언어고고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5년 전 즈음에 논문을 봤는데 연구자 이름을 잊었습니다)

빙하기라고 해서 그 긴 시간 동안 계속 혹한이었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최종 빙하기의 초기인 3만여 년 전, 또는 2만여 년 전에 한반도와 남만주에 고립돼 있던 언어집단이 몽골, 또는 시베리아 경로를 따라서 알타이산맥 인근으로 이주하여서 그곳에 있던 언어집단과 만나서 언어유전자를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무쿠리님의 댓글

예ㆍ맥ㆍ한의 설명이나 주장은 거리를 두고 보실 것을 권합니다

왜냐하면

첫째, 이미 철기시대인 후대(후한ㅡ조위ㅡ서진, 광개토대왕비 등)의 개념을 그보다 훨씬 전대인 신석기ㆍ청동기 시대까지 소급하여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한, 예, 맥이 최초 관찰되는 시기는 BC 11~춘추시대인데 이들은 한반도가 아니라 현 하북성ㆍ산서성 일대이기 때문입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그렇군요. '최초 관찰'이라는 것은 문헌을 말씀하시는거죠?

신용하 교수는 유물/문화를 기반으로 9천년전~5천년전 한반도와 만주를 세 집단으로 분류하고 한/맥/예라고 하신건데, 그렇다면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정해야겠네요.

무쿠리님의 댓글

. BC 12세기부터 철기 시작



남연해주 일대의 발굴 및 연구성과를 반영한 서술로 보이는데
만주와 한반도에 이들 철기문화가 정착된 것은 그보다 훨씬 후대입니다

고고학계에서는 현재 중국계 주조철기와 남연해주계 단조철기 문화 중에서 어떤 것이 우리 철기문화의 주류였는지 다투고 있습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네. 첫 등장을 BC 12세기로 언급합니다. 확산은 그 후죠.

무쿠리님의 댓글

. 고조선의 기마문화의 형성과 발전 : 부여에서 시작. 농경문화에서 가축화 후 유목문화로 전파. 최종적으로 유목기마문화=기마민족 탄생에 기여.



기마문화는 대체로 BC 12세기를 전후하여서 중국(상나라)과 고조선에 전파됐습니다

이 시기는 몽골과 시베리아 지역이 급격히 한랭ㆍ건조해진 기후변화와 맞물리는 시기로서 이 시기에 동시베리아 청동기 문화 또한 동시다발적으로 중국과 고조선 영역에 전해집니다

부여에서 기마문화가 관찰되는 때는 서기 1~2세기 유적ㆍ유물(길림)을 통해서입니다

물론 당연히 이보다 더 오래 전부터 기마문화가 자리하였을 것입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신용하 교수와 의견이 다르시군요.

저도 기마문화의 시작과 확산이라는 주제는 흥미를 갖고 있는데 시간이 나면 따로 공부를 해봐야갰습니다. 과연 '한'족은 언제 기마문화가 생겼을지...

공칠공구님의 댓글의 댓글

기마문화는 칼들고 말을 타면서 싸움 하는 <맥>이 호미와 삽으로 밭을 갈면서 살아가던 <예>를 압도적으로 정복하는 과정에서 전파되었을것이오.

한국사 체계를 범위로 보면 부여가 그 시작이고 가야가 그 끝이요.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공칠공구님의 의견에 따른다면 고조선이 설명되지 않는게 아닌지...?

공칠공구님의 댓글의 댓글

길게써서미안하오.

서한시대부터 <기자가 조선에 봉해졌다..혹은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라는 다소 꾸며진것으로 의심되는 내용이 등장했소.
그 이유는 서한시대 동쪽에 <위만조선>이 있었기때문이오.그니깐 <위만조선>을 먹으려는 수작이요.

과연 얼마 되지 않아 <위만조선>은 먹히게 되오.그리고 <낙랑군>으로 되었소.이로써 <조선>이라는 명칭이 역사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웬일인지 <낙랑군>속현에 <조선현>이 있는것이오.<조선현>의 존재때문에 <조선>이라는 명칭은 사라질수가 없게 되었소.

그 이유는 사가들이 지자랑? 뭐 이러한 태도때문에 <조선현>이라는 곳에다가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라는 다소 엉뚱한 내용을 싣는 바람에 이것이 나중에 <조선>이라는 명칭만 등장하면 <기자가 조선에 봉했다>라는 내용이 꼬리표처럼 따라붇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었소.삼국지 동이전을 읽어보면 그냥 <조선>이라는 글자만 나오면 사가들은 그저 내용과 관련도 없는 <기자가 봉해졌다..위만이 건너갔다..>등등 내용을 집어넣는 현상을 볼수있소.

그러다가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이 동방을 수백년 통치하면서,<조선>이라는 명칭이 이젠 슬슬 사라지는가 싶더니...<고구려>를 먹으려는 당나라가 본격적으로 <고구려 평양성=한나라 낙랑군 왕험성>이라는 다소 근거가 부족한 논리를 등장시켰고 통설로 만들었소.또 <낙랑>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조선>과 동일하게 사용되었기때문에 이는 결국 <조선>이 또 다시 부활하는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소.원래는 <조선>이라는 글자만 나오면 <기자조선-위만조선>등 내용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면 당나라때부터는 <평양>이라는 지명만 나오면 <낙랑군이다.옛 조선국이다.기자가...위만이...>하면서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는 꼴이 되었소.

고구려가 멸망하고 발해,고려 이런 나라들이 흥기했는데,얘네들이 정신차리면 모를가,근데 고려는 역사적인 큰 실수를 저질렀는데,그건 바로 지금까지 다소 어이없는 내용들을 고대로 수용해서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점이요...이때문에 그 전의 정사에서는 보이지도 않던 <기자조선->위만조선->동방의 XX국>의 내용이 고려열전부터 원사,명사 이런데 주구장창 등장하는것이오.그럼 고려가 죽으면 정신차리는가?이성계가 고려를 죽이고 조선을 열었는데,고려보다 더 심하게 사대하였소.특히 그 나라 명칭을 아예 <조선>이라고 지어놓는 바람에 역사적으로 유례없던 <기자조선->위만조선>등 내용이 역사서에 등장하는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소.

최근에는 <고조선 문화권/세력권>등 이상한 이미지들이 등장하면서 마치 <고조선>이 원래부터 대제국이였다가 흩어져서 열국이 되었다는 식의 근거없는 이야기들이 거의 주류가 되어가고있소.

나는 <고조선>은 그냥 신라와 같은 작은 나라라고 생각하오 ~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긴 댓글 감사합니다.

주장하신 바는 알겠습니다. 중국 사가들의 역사왜곡 관점에서 조선과 낙랑이 이용되었다는 ...

그렇지만 환인-환웅-단군왕검의 신화는 우리 스스로의 기록이고, 고인돌/청동검은 한반도와 만주에 실존하는 유물입니다. 이를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공칠공구님의 댓글의 댓글

고인돌 청동검 은 확실히 그렇게 분포되어 존재하지만,그 부분에 대해서 지역적으로 볼때 아마 그들은 <예>라고 불리우던 사람들의 직계 조상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드오.
그리고 그들이 남겨놓은 유품은 그것이 꼭 동일한 특정 세력의 문화권 이라고 하기보단,그냥 동일한 문화권의 여러 세력이 함께 여러 시대를 걸쳐 남긴 종족 특성을 지닌 유품이 아닐가..하는 생각이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예의 직계조상이라는 말은 그저 '고아시아족이다'는 말로 들리네요.

신용하 교수가 고고학성과에 근거해 주장하는 3종족 설이 더 설득력 있습니다. 책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덧붙여 윤내현 교수께서는 님과 동일하게 중국문헌 분석만으로 대고조선을 주장하셨는데요, 예/맥만을 주장하는 건 근거가 빈약해 보입니다. 그리고 윤내현 교수님도 한민족의 출현을 청동기 시대(최소 서기전 24세기)로 보십니다.

무쿠리님의 댓글

. 고조선-고중국의 국경은 영정하였으나 만리장성 축조 후 난하로 이동.



대체로 하북성 보정시에 있는 이하(역하)를 경계로 하되
이하와 영정하 사이에 그 경계가 있었다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전국연의 성장과 고조선의 영역변화는 아직 입론하지 않은 가설단계의 제 고유학설로서 동아게와 임시대피소에서 피력한 바가 있어서 보셨을 것입니다



난하 동쪽으로의 후퇴는 BC300년 전후 전국연의 군사활동에 따른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연의 장성이 진으로 계승될테니...  시기 차이는 있지만 동일한 관점이네요.

우리 민족 강역 축소의 역사도 정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는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니까요.

무쿠리님의 댓글의 댓글

시기가 중요한데 동일한 관점이라뇨?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그렇군요. 제가 잘못 생각했네요.

무쿠리님의 댓글

. 위만이 후조선 준왕에 반역하여 본국 장악. 한무제의 침략과 위만조선의 멸망. 열국시대 개막



열국시대는 이미 부여의 성립, 준왕의 퇴출 시기인 BC 200년 전후한 시기, 또는 그보다 이전에 있었다고 보고 위만조선의 멸망~장수왕 시기를 다시 대통합되는 재통합의 시기라고 봅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소위 준왕의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과연 고조선의 본국이었는지, 아니면 제가 생각하듯 '진국'이 본국이었는지 궁금하네요. 본국의 약화 또는 멸망에 따라 후국들이 일제히 열국으로 전환됐을 개연성이 높으니...

흥무대왕님의 댓글

무쿠리님 댓글을 보다가 생각난 건데, 신용하-윤내현-김상 설을 하나의 통사로 편찬하여 우리 고대사의 '바이블'을 만들고, 매년 새로운 학설이나 고고학 발굴성과를 추가하여 업뎃해 나가면 더 바랄게 없겠네요. ^^

무쿠리님의 댓글의 댓글

공부를 하셔서 저들의 주장을 검증하셔야죠
그게 먼저죠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통사 편찬이나 검증은 전문연구자들께 맡깁니다~^^

무쿠리님의 댓글의 댓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네요

공칠공구님의 댓글의 댓글

흥무대왕: 역사애호가
무쿠리: 역사연구자

공칠공구님의 댓글

정리하신 내용을 잘 읽었소.정리하시는라고 고생하셨소.
다만 그 분의 <한/예/맥의 한반도 기원설>은 약간 과했소.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볼때 <맥족>은 중원의 북방에서 활동하가 점점 동쪽으로 이동해가는 집단이라고 봐야 하오.
그리고 예족은 적어도 맥족 보다는 일찌기 현 동북지역과 한반도에 골고루 분포되어 살아가던 집단으로 보여지오.
따라서 만약 북위40도 이북에 사람이 없다가 나중에 사람이 살았다면 한반도의 인류가 예족의 형성에 중요한 작용을 했을 가능성은 무시할수 없소.
다만 애매한것이 한 인데,얘네는 종족인지 특정 지역인지 아니면 뭘 하는 애들인지 도무지 그 정체를 알수 없소.나는 개인적으로 한 이라는 애들은 맥족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예족과 합쳐지면서 그것을 기본으로 하여 생겨난 후대 집단이 아닐가 하오.

고려 북계 관련 책도 두권 구입하신거로 기억하고 있는데,기대하겠소.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오호... 맥족의 기원에 대해 다른 정보가 있나보군요. 예족은 고아시아족으로 보시는건가요? 암튼 신교수님과는 생각이 많이 다르시네요. 근거가 궁금합니다.

앞뒤가 연결되는 흐름도 궁금하고요.

공칠공구님의 댓글의 댓글

사료기록에 근거하면 기원전 3세기 이전 까지 <맥>은 요하평원에 있었소.그리고 그 동쪽인 현 동북지역 및 한반도 지역에는 <예>가 있었소.이 당시에는 <맥>과 <예>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시기였고 <예맥>은 존재하지 않았소.

기원전3세기 부터 <맥>의 일부가 동쪽으로 이동하는데 이로써 <예>의 나와바리로 들어가는 현상이 생기게 되고,유목문화를 가진 <맥>은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예>를 압도적으로 제압하고 <예>지역의 새로운 통치세력으로 되었소.또 이때부터 <예맥>이라는 명칭이 자주 등장했소.

이 시점에 중국 사료에 등장하는 소위 연나라 동북쪽의 동호 즉 <조선,예맥,진번,부여...>이런 애들은 다 그 대표적인 세력이요.

그래서 나는 한국사에서 기마문화의 전파는 <맥>이 <예>로 들어가면서 전파된것으로 보고 있고,그것은 기원전 3세기에 시작되는것으로 보고 있소.나중에 부여에서 갈라져나간 고구려,고구려에서 갈라져나간 신라와 백제,또 부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가야 등 세력은 모두 <맥>의 세력으로써 <예>의 땅을 통치하는 상황이오.즉 전체적인 흐름은 <맥>이 <예>를 통합하는 과정이 곧 한민족의 형성과정이요.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잘 봤습니다.
주장하시는 바는 모두 중국 문헌에 의한 내용이군요. 아마도 서기전 8세기~서기전 1세기 정도?

고고학 성과와 비교 검토가 필요해 보이지만...
참고하겠습니다.

흥무대왕님의 댓글의 댓글

복기대 책 2권도 시간나는대로 정리해 보죠.

공칠공구님의 댓글의 댓글

저는 개인적으로 그 부분이 더 기대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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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무쿠리 334 6 0 2021.10.28
레벨 무쿠리 166 6 0 2021.11.16
레벨 무쿠리 132 6 0 2021.10.29
레벨 룹버 164 6 0 2021.11.03
레벨 룹버 199 6 0 2021.11.03
레벨 황웅 239 6 0 2021.11.11
레벨 황웅 164 6 0 2021.11.11
레벨 흥무대왕 205 5 0 2021.11.14
레벨 애기강뭉 161 5 0 2021.10.28
레벨 애기강뭉 140 5 0 2021.10.28
레벨 무쿠리 198 5 0 2021.10.30
레벨 황웅 190 5 0 2021.11.19
레벨 룹버 271 5 0 2021.11.05
레벨 애기강뭉 168 5 0 2021.11.06
레벨 무쿠리 238 5 0 2021.11.11
레벨 룹버 181 4 0 2021.10.25
레벨 러키가이 196 4 0 2021.11.13
레벨 무쿠리 155 4 0 2021.10.26
레벨 무쿠리 432 4 0 2021.10.26
레벨 무쿠리 145 4 0 2021.11.14
레벨 스포메니아 145 4 0 2021.10.29
레벨 범고래 197 4 0 2021.10.31
레벨 목풍 164 4 0 2021.11.04
레벨 무쿠리 335 3 0 2021.10.27
레벨 애기강뭉 143 3 0 2021.10.27
레벨 황웅 140 3 0 2021.11.14
레벨 스포메니아 151 3 0 2021.11.15
레벨 흥무대왕 139 3 0 2021.11.15
레벨 목풍 137 3 0 2021.10.28
레벨 황웅 158 3 0 2021.11.16
레벨 무쿠리 138 3 0 2021.10.29
레벨 무쿠리 181 3 0 2021.11.16
레벨 황웅 158 3 0 2021.11.23
레벨 목풍 117 3 0 2021.11.04
레벨 룹버 242 3 0 2021.11.05
레벨 룹버 161 2 0 20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