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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의 구망(勾芒)과 우리 무속 신앙

본문

중국 상고대(上古代)의 신화적 세계를 담고 있는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은 각 편의 말미에서 그 지역을 지키는 신을 소개하고 있는데 해외동경(海外東經) 편에서는 동방의 신으로 구망을 소개하였습니다.

 

東方勾芒鳥身人面乘兩龍

동방(東方)의 구망(勾芒)은, 새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두 마리의 용을 타고 다닌다.

 

이에 대해서 4세기 초 진(晉)나라의 학자인 곽박(郭璞)은 다음과 같이 설명(注)하였습니다.

 

木神也方面素服墨子曰昔秦穆公有明徳上帝使勾芒賜之壽十九年

목신(木神)이다. 그가 관리하는 구역은 흰 옷을 입는다. 묵자(墨子)가 가로되, "옛날 진(秦)나라 목공(穆公)은 공명정대하고 덕이 있어서 상제(上帝)는 구망(勾芒)에게 (목공의) 목숨을 십구 년(十九年) 늘리게 하였다."고 하였다.

 

동방(東方)의 신은 그 이름이 구망(勾芒)이고, 그 성격은 목신(木神)이라는 것인데요 구망이 동방의 신이면서 목신인 까닭은 음양오행 사상에 따르면 동쪽(東)이 목(木)인 데에 있습니다. 양기(陽氣)가 뻗치기 시작하는 것을 음양오행 사상에서는 東과 木으로 개념화 하였습니다.

 

구망에 대한 설명, 또는 그 이름이 언급된 문헌에는 산해경 외에도 《여씨춘추(呂氏春秋)》, 《예기(禮記)》, 《춘추좌전(春秋左傳)》, 《회남자(淮南子)》, 《독단(獨斷)》 등으로 수다(數多)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사실에 주목한 까닭은 다른 것보다 그 '구망(勾芒)'이라는 이름에 있습니다. 저는 사실 10대 시절에 우리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무속과 민속에 무척 심취했습니다. 그래서 역사연구를 하면서 고대 사서와 문헌을 보다가 '구망'을 발견하고서는 곧바로 이것이 떠올랐습니다.

 

'가망'

 

아마도 우리 무속에 대한 지식이 있는 분이라면 무릎을 탁 치실지도 모르겠군요.

 

"한국 무속에서 신령들의 근원(根源)을 관장하여 굿문을 열고 신령과 인간이 만날 수 있게 하는 신령의 이름." 

『한국민속신앙사전』

 

'구망'과 '가망'은 공교롭게도 소리값이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神)이라는 성격 또한 일치합니다. 더구나 중국 쪽에서 봤을 때에 동방(東方)은 우리 민족이 사는 곳이죠.

 

어떤 분들은 똑똑하게도, "한자음은 시대에 따라 변천했는데 한나라 이전의 문헌(산해경은 한나라 때에 취합됐습니다)에 적힌 구망이 그 당시에도 구망으로 읽히고 불렸을지 모르겠군요?"라고 의문을 표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합리적 의심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구망은 그 소리값이 거의 변하지 않고 내려왔습니다. 구망은 문헌에 따라 句芒과 勾芒, 이렇게 두 가지 형태로 적혔는데요 언어학자들이 재구한 상고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句芒과 勾芒의 현대음과 상고음>

 한자

현대 한국 한자음 

현대 중국 한자음 

 상고한자음

 勾

 구[ku]

 Gōu[쥐]

 koː

 句

 구[ku]

 Gōu[쥐]

 koː

 芒

 망[mang]

 Máng[망]

 maːŋ

※ 상고한자음 : 상·주 시대 ~ 서기 3세기 한자음 



우리 무속에서 신(神)을 뜻하고 가리키는 말은 다 같은 계통의 소리값을 지녔습니다. 감, 검, 금(줄) 등. 일본어에서 신을 뜻하는 '가미'라는 말이 우리말 '감/검'에서 넘어간 말이라는 것은 이제는 상식에 속하죠.  

단위

 신(神)을 뜻하는 말

 인접어

 한국어

 검(神), 감(神), 금(神), 가망(神), 곰(熊), 곰(虎), 곰(神) 등

 간(干), 한(汗), 지(支), 하(瑕), 개차(皆次) 등

 일본어

 카미(かみ : 神)

 카미(かみ : 上)

 

어떤가요? 이천 수백 년 전 중국 고대 문헌에 적힌 동방의 신 이름이 우리 무속에서 근원신이자 중보자(仲保者) 역할을 하는 신의 이름과 같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541a8854c2965615162858ee6dc2c14e_1635268741_7394.jpg

<동방의 신 '구망' 상상화(출처:구글검색)>




ⓒ 무쿠리(mvk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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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3

무쿠리님의 댓글

이 글은 다음의 위치에서 백업한 것입니다

임시대피소 역사게시판
2021-08-26
https://cafe.naver.com/imsigasengi/1303

Marauder님의 댓글

정말 잡지식도 많이 알고계시네요 ㄷㄷ

무쿠리님의 댓글의 댓글

원래 강역사 파고들기 전에 이런 미시사와 어원에 주로 관심이 많았어요

10대 시절부터의 꿈이 이런 거를 현대감각에 맞게 디자인해서 의류, 산업분야, 소설, 영화, 드라마 등에 적용해보는 거였죠

그래서 신화, 설화, 디자인, 미술 이런 책이랑 잡지들을 탐독했다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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