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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어와 우리말 - 시라무룬허(西拉木倫河)와 라오하허(老哈河)

본문

거란은 서기 4세기 말, 광개토대왕 대에 고구려에 복속된 이후 645년 당시 거란의 추장 대하굴가가 고구려를 배신하고 당 태종에게 가서 빌붙기까지 근 300 년 동안 고구려의 복속민내지 고구려 구성원으로 있었다.


645년 거란의 고구려 배신은 이후 668년 고구려가 멸망에 이르는 데에 일조하였는데, 이는 수당과 고구려 사이에서 고구려의 창과 방패 역할을 하였던 것이 거란이었던 까닭이다.


고구려 멸망 후 거란은 696년 고구려 유민과 함께 당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켜서 하북지역을 삽시간에 유린하였고, 이 대규모 소요는 고구려의 재건, 즉 발해 건국의 결정적 기회가 되었다.


거란은 733년, 발해의 당 유주 공격(마도산 전투) 당시 발해의 선봉대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이후의 거란사를 살펴보면 돌궐과 발해 사이에서 이중복속 상태를 오가면서, 때로는 당나라에 저자세를 취하면서 이익을 추구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925년, 발해를 대침공하기 전, 그 계획을 세우면서 거란의 야율아보기가 "발해에 대한 사무치는 원한" 운운하였던 것이 《요사》에 기록돼 있는데 이를 비추어 보면 거란은 야율아보기 대에 흥하기 전까지 발해와 상당히 굴욕적 관계를 맺고 있었음이 추정된다.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킨 직후 곧바로 그 해 926년에, 거란의 중심지인 상경 지역으로 발해인들을 대규모 이주시켰다. 발해인들이 사민된 지역이 거란의 중심지라는 사실 외에 거란의 인구 구성에서 발해유민들이 상당한 규모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고구려에서 발해에 이르는, 저 4세기부터 10세기까지의 거란과 우리 민족과의 밀접한 역사로 미루어보건데 그 언어와 풍속에 있어서 저들 거란이 우리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아래의 글은 이를 거란의 중심지인 시라무룬허와 라오하허의 본명(本名)을 우리말과 비교하여 그 상관성을 검토함으로써 가볍게 타진한 것이다.



- - - - - - -



A.서랍목니하(西拉木伦河)의 경우




1. 효라개몰리 - 신오대사


其居曰梟羅箇沒里. 沒里者, 河也. 是謂黃水之南, 黃龍之北, 得鮮卑之故地, 故又以爲鮮卑之遺種.《新五代史 卷七十二四夷附錄第一》

그들이 살던 곳을 효라개몰리(梟羅箇沒里)라고 말한다. 몰리(沒里)는 강(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황수(黃水)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을 이르는 것으로 선비(鮮卑)의 옛 땅을 획득한 것이라 예로부터 또한 선비(鮮卑)의 남겨진 무리(遺種)라고 말했다.



2. 황수(潢水)와 시라무렌 



1) 위키백과


시라무룬허(몽골어: Šira Mören 시라무렌, 중국어: 西拉木倫河(서랍목륜하), 병음: Xilamulunhe)는 내몽골 자치구 동부를 흐르는 하천이다. 랴오허 수계에 속하고 라오하허(老哈河)와 합류한 후에 시랴오허(서요하)가 된다. 시라무렌은 몽골어로 "누런 강"을 의미한다. 황하와 구별하기 위해 이전에는 황수(潢水)라고 쓰여졌다.



2) 바이두백과


潢水,古水名。亦作潢河,黄水,饶乐水。即今内蒙古西拉木伦河。

황수는 옛 강이름이다. 황하, 황수, 요락수라고도 한다. 즉 현 내몽골 서랍목륜하이다.



3. 요락(饒樂) 



1) 요락부와 한수(漢水) - 중경/무경총요


戎狄舊地中京,舊鮮卑之地,在饒樂府西南,本奚王國牙帳之地。奚部落南距古北口,北距漢水,東即營州千餘里,皆其境土,後為契丹所並。《武經總要 前集 邊防一下 北蕃地理》

융적의 옛 땅인 (거란의) 중경은 옛 선비족의 땅으로 요악부 서남쪽에 있는데 본래 해국 왕의 아장(행궁/궁궐)이 있던 곳이다. 해부락(이 살던 땅)은 남쪽으로 고북구와 떨어져 있고 북쪽으로는 한수와 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영주가 천여 리에 있었는데 훗날 거란이 그 영역을 병합하였다.



4) 요락주 ㅡ 상경/무경총요


饒州(饒樂州),唐建饒樂府都督,以處奚人部落。契丹建為饒州,在潢水之北石橋旁,以渤海人居之。西南至平地松林百里,南至中京五百里,北至它河十里,東北至上京三十里,西北至祖州七十里。《武經總要 前集 邊防一下 北蕃地理》

요주는 당나라가 해부락이 거처하는 땅에 요악도독부를 세웠던(설치했던) 곳이다. 거란이 (그곳에) 요주를 세웠(설치했)는데 황수 북쪽의 석교 근처이며 발해인들을 데려다 거주하게 했다.



4. 해(奚)와 요락수 ㅡ 구당서


奚國, 蓋匈奴之別種也, 所居亦鮮卑故地, 卽東胡之界也, 在京師東北四千餘里. 東接契丹, 西至突厥, 南拒白狼河, 北至霫國. 自營州西北饒樂水以至其國.《舊唐書 卷二百一十二 鐵勒契丹奚室韋靺鞨渤海靺鞨霫烏羅渾》

해국(奚國)은 대개 흉노(匈奴)의 별종이고 (그들이) 살던 곳은 또한 선비(鮮卑)의 옛 땅이자 곧 동호(東胡)가 (살던 곳과) 접하고 있고, (당의) 경사(京師)에서는 동북쪽으로 4,000여 리에 있었다. (그들의 영역은) 동쪽으로는 거란(契丹)과 접했고 서쪽은 돌궐(突厥)에 도달했고 남쪽은 백랑하(白狼河)가 가로막고 있고 북쪽은 습국(霫國)에 도달했다. 영주(營州) 서북쪽의 요락수(饒樂水)로부터 그들 나라에 도달하게 된다.



5. 고막해(庫莫奚)와 약락수(弱洛水) ㅡ 위서(魏書)


庫莫奚國之先, 東部宇文之別種也. 初爲慕容元眞所破, 遺落者竄匿松漠之間.

고막해국(庫莫奚國)의 조상은 동부(東部)우문(宇文)의 별종(別種)이다. 일찍이 모용원진(慕容元眞)에게 격파되자 흩어져 남은 자들이 송막(松漠)의 사이로 달아나 숨었다.

登國三年, 太祖親自出討, 至弱洛水南, 大破之, 獲其四部落, 馬牛羊豕十餘萬.《魏書 列傳第八十八 高句麗百濟勿吉失韋豆莫婁地豆於庫莫奚契丹烏洛侯》

등국(登國, 북위 도무제) 3년(388), 태조(太祖)가 친히 토벌하러 나가 약락수(弱洛水) 남쪽에 이르러 이들을 대파하고, 그 4개 부락과 말, 소, 양, 돼지 10여 만 마리를 얻었다.



6. 약락수 - 동북아역사넷


대한민국 사학계 통설에 기반하는 동북아역사넷의 弱洛水 주석에 따르면 “弱洛水는 饒樂水, 澆洛水, 즉 시라무렌강이다.”라고 돼 있다


상기 여러 사서 기록 상의 황수(潢水)와 한수(漢水), 요락수(饒樂水)가 기록만을 놓고 보더라도 동일한 강을 가리킨다는 것을 합리적 사고력을 지닌 이라면 대번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황수는 황수(黃-), 또는 황하(黃- /潢- )로도 적는데 우리가 아는 그 황하와 구분하기 위해서 삼수 변을 붙여 潢水라 적은 것이다



7. 검토


결국 황수(潢水), 황수(黃水), 한수(漢水), 요락수(饒樂水),요락수(澆洛水),약락수(弱洛水)가 같은 강, 즉 대흥안령 산맥 남서쪽에서 발원해서 수백 키로미터를 동쪽으로 흘러 서요하로 흘러드는 시라무렌강을 달리 표기한 것이다.


이를 몽골어로 Šira Mören(시라무렌), 한자차자표기로 西拉木倫河(서랍목륜하),영문으로 Xilamulunhe, 또는 Xar Moron River라 한다


Sira 는 그 강물의 누런 흙빛을 나타내는 말인데


이를 소리값을 취하여 적은 것이

ㅡ 요락수(饒樂水)

ㅡ 요락수(澆洛水)

ㅡ 약락수(弱洛水)

이며


이를 뜻(물빛의 상태)을 취하여 적은 것이

ㅡ 황수(黃水)이고

이를 황하와 구분하기 위해 달리 표기한 것이

ㅡ 황수(潢水)이며

또 이들의 한자음을 따서 적은 것이

ㅡ 한수(漢水)

인 것이다


이 강의 물빛이 누런 이유는 대흥안령 서쪽의 건조한 지역에서 발원하기 때문에 흙이 섞여 들어서이다.


‘시라’와 우리말 ‘누런’은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흙이 섞인 물의 상태를 우리는 ‘흐리다’라고 표현한다.


거란은 현 적봉시와 파림좌기 사이의 시라무렌강을 사이에 두고 넓게 퍼져서 살았다.


위 신오대사의 효라개몰리(梟羅箇沒里)는 시라무렌강, 즉 황수와 별개의 강처럼 보이나 “이것(효리개몰리, 즉 그들이 살던 곳)은 황수(黃水)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을 이르는 것으로 선비(鮮卑)의 옛 땅을 획득한 것”이라는 뒤의 설명은 북위가 북연을 멸망시킨 후 시라무렌강 북쪽, 현 파림좌우기 지역에 있던 거란의 일부가 고구려를 피해 남하해 북위에 복속한 사실에서 온 관용적 기술이다.


즉 효라개몰리(梟羅箇沒里)는 시라무렌을 달리 적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본인의 판단이다. (이 추정은 《거란국지》에서 사실로 확인된다)


몰리는 물(강)이므로 무렌과 통하고

효리개는 시라와 같은 말이라고 본인은 본다.


즉 효리개는 ‘흐리다/흐린 곳’을 뜻하여 우리말과 그 어원을 같이 하는 말인 것이다.


ㅎ과 ㅅ은 서로 쉽게 전이되는 소리값이다. 고대로 오를 수록 중성, 즉 모음의 소리값은 부정형(불확정형/가변형)이었음을 상기할 때에


시라는 히라 ㅡ ㅅ(ㅎ)ㆍㄹㆍ +  ㅁㆍㄹ

흐리(다)는 ㅎㆍㄹㆍ +  ㅁㆍㄹ


그리고 시라무렌과 효라개몰리(梟羅箇沒里)


한편으로, 우리말에서 'ㅅ'와 'ㅎ'이 통하는 다른 사례에는 희다(白)와 시다/세다(白)가 있다.



B. 로합하(老哈河)의 경우



1.북먀리몰리(北乜裡沒里)와 도외새몰리(陶猥思沒里) - 거란국지


本其風物,地有二水。曰北乜裡沒里,複名陶猥思沒里者,是其一也,其源流出自中京西馬盂山,東北流,華言所謂土河是也。曰裊羅個沒里,複名女古沒里者,又其一也,源出饒州西南平地松林,直東流,華言所謂潢河是也。至木葉山,合流為一。《契丹國志 序》

본래 그(거란의) 풍물(자연환경)에 (그 사는) 땅에 강이 2 개가 있다. 하나는 북먀리(배먀리/북먀이)몰리인데 다른 말로 도외사(요외새/도외새/요외사)몰리라고도 하며 그 물은 중경 서쪽 마우산(본인은 마수산으로 추정)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흐르는데 중국(인들)이 일컫는 토하(土河)가 이 강이다. 다른 또 하나는 요나개(요라개/뇨라개/뇨나개)몰리로 다른 말로 여고(녀고)몰리라고도 하며 그 물은 요주 서남쪽 평지송림(대흥안령 남단 남서쪽, 연산산맥 북단 서북쪽의, 경상남북도 넓이에 필적하는 넓이의 고평원 지대)에서 발원하여 곧장 동쪽으로 흐르니 중국에서 일컫는 황하(潢河 : 시라무렌강)가 이 강이다. 이 두 강은 목엽산을 이르러 합쳐져 하나가 된다.



2. 검토


평지송림(平地松林)에서 발원하는 요나개몰리는 기록에서 직접 설명하였듯이 황하(潢河), 즉 오늘날의 시라무렌강이다. 북먀리몰리, 또는 도외새몰리라 하는 강은 동북쪽으로 흐르는 강이자 목엽산 근처에서 시라무렌강과 합수해 서요하로 들어가는 강으로 오늘날의 로합하이다.


그런데 우리 옛말에서 북(北)쪽을 되(뒤/ㄷㆍ)라고 했다. 북쪽 오랑캐를 ‘되놈’이라 했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된바람’이라 했으며, 북동풍을 역시 동쪽을 뜻하는 ‘새(쇠/시/ㅅㆍ)’를 붙여 ‘되새바람’이라고 했다.


북먀리몰리와 도외새몰리는 같은 강을 달리 적고 부른 것인데 ‘몰리(沒里)’는 몽골어의 ‘무렌/무룬’, 우리말의 ‘물’, 왜어의 ‘미즈’와 마찬가지로 물을 뜻함으로 제하고 북먀리와 도외새가 같다는 분석이 성립하는데 그 표기자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北乜裡 = 陶猥思


北乜裡

북먀리/북먀이/배먀리/배먀이


陶猥思

도외사/도외새/요외사/요외새



북동쪽으로 흐르는 긴 강이 매우 드문 사례임을 상기하여 이 강의 이름이 그 흐르는 방향을 일컫는 것에서 왔다고 가정할 시에



이는 다시

ㅡ 북먀리/북먀이

ㅡ 도외사/도외새

추려지는데


결국

북먀리( -이) = 도외사( -새)

이므로


이 두 말은 같은 뜻을 지녔다는 판단은 성립한다.


北乜裡 = 陶猥思


北乜裡(북먀리)는 北쪽을 뜻하는 北과 거란어로 추정되는 먀리(먀이乜裡)가 결합한 합성어(훈차 + 음차)이고 陶猥思(도외새)는 음차자로서 도외사, 또는 도외새는 되사, 또는 되새로 말을 새길 수 있는데 이는 우리 옛말 그대로 북동쪽을 뜻하는 ‘되새- ’와 그대로 통하는, 동일어인 것이다.




C. 거란어와 우리 옛말


거란어는 이미 사어로서 학자들은 몽골어와 유사하되 말갈/여진족 등의 어족과 어휘를 일부 공유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거란어(契丹語)

<국어국문학자료사전>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694866&cid=60533&categoryId=60533


한편 거란의 순수 인구는 사서 등을 토대할 때에 수만 명 정도로서, 대략 3만 명에서 5만 명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이는 사서 기록이 성인 남성만을 기준으로 했다고 볼 수도 있으므로 이를 채택할 시에 전체 인구는 10 만 명 내외였다 추산할 수 있다.


북위와 수에 이르는 시대에 1만여 호가 중원왕조에 신속하였다가 다시 1만여 호가 고구려로 가 신속했던 사실 기록으로 볼 때에도 1호(가구) 당 5인~7인임을 감안하면 5만 ~ 7만으로 추산되고. 이들이 거란 인구의 총체라 보기 어려우므로 10 만 내외가 합당하다 판단한다.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신오대사를 편찬할 당시의 11세기로 볼 적에, 요사를 근거하면 거란 상경도와 중경도 주현을 구성하는 인구의 상당수가 발해인이었으므로 거란의 언어에 발해, 즉 우리 고대어가 섞여들었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 '거란국지'는 1180 년에 남송의 섭융례가 편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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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2

범고래님의 댓글

알렉산더 보빈은 거란어에 고구려어로부터 차용한 어휘가 상당수 있을 거라고 보더군요. 이 사람 말이 다 맞는 건 아니지만 흥미로운 주장이었어요. 그런데 사실일 것 같아요. 고구려의 영향을 워낙 오랜 기간 받은 집단이라.

축하합니다. 첫댓글 포인트 1GOLD를 획득하였습니다.

Nirvana늑대님의 댓글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의 고서가 모두 불타없어져 현존하지않으니 알수가없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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