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톡하고

친목게시판

무지개

본문

약 15년 전 쯤이었나요?


아마 동남아에 들락거리기 시작한 초창기였쥬.


태국 정글 마을 구경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어느 학교.


이런 깊은 정글 속에도 학교가 있구나.


작은 운동장엔 여기저기 잡초가 무성해서 폐교인가 싶기도 한디


들어가 보니 학교 건물은 단층에 교실은 마루 복도를 따라 달랑 2개 뿐.


나무로 된 복도는 어릴 적 국민학교 때랑 같은데


흙먼지가 끼어서 온통 회색빛이고 여기저기 구멍이 쑹쑹.


애들 뛰어 놀다가 다리라도 빠지면 어쩌려고...?




호기심에 교실 하나를 들여다 보니 휑~하니 아무 것도 없는데 


나무 바닥 위에 3~4살 쯤 되어 보이는 애기들 십 여명이 누워 자고 있고


바로 옆 다른 교실을 들여다 보니 


5~7살 쯤 되어 보이는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바닥에 앉아 놀고 있더만유.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내 다리를 만지는 느낌이...


화들짝 놀라서 내려다 보니


두 팔로 내 한 쪽 다리를 감싼 채


고개를 한껏 쳐들고 날 올려다 보고 있는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얼굴은 세수를 안 했는지 때 자욱이 얼룩얼룩하고


입고 있는 옷도 낡아서 여기저기 헤져 있는데


눈동자만은 어찌나 맑고 초롱초롱하던지....




너 이름이 뭐니?


묵묵부답. 미소만 지어 보입니다.


마침 학교 정문으로 선생님들로 보이는 여자분들이 들어오는게 보입니다.


태국은 선생님들이 유니폼을 입기에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한 후 한국에서 왔는데 


잠시 학교 구경하러 들어왔다고 말하니 웃으며 반겨줍니다.


선생님들께 제 다리를 감싸 안은 아이 이름을 물어보니 


'싸이룽'이라고 합니다. '무지개'라는 뜻이랍니다.


선생님들 말을 들어보니 애기들이 자고 있던 교실은 유치부이고


그 옆 교실은 1~2학년이 공부하는 교실이었습니다.


정글 속이라 아이들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낮잠 시간이었는데 유치부 아이인 싸이룽은 혼자 안 자고 밖에서 놀다가


학교에 침입한 이방인인 저를 발견했나 봅니다.




학교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싸이룽 뒤를 따라 싸이룽 집에 가봤습니다.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게 없는 나무로 만든 낡은 집 앞에서


싸이룽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은 


낡고 찌그러진 냄비 하나를 놓고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고 있더군요.


인사를 한 후 집 안을 얼핏 보니 삐쩍 마른 남자 하나가 누워 있길래


동행한 태국인을 시켜 누구냐고 물어보니


싸이룽 아버지인데 오랫동안 앓고 있어 항상 누워 있다고 합니다.


배가 고팠던걸까?


불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낡은 냄비만 쳐다보고 있는 싸이룽.


그렇게 시작된 싸이룽과의 인연.




며칠 안 남은 5월


태국 어느 깊은 정글 마을 출신


때국물이 줄줄 흐르던 유치부 애기였던 싸이룽이 


우리로 치면 서울대에 해당하는 태국 최고 대학인 쭐라롱꼰 대학에 입학합니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멀리 갈 사정이 못된다. 입학식에 못 가 미안하다고 말하니


안 그래도 다음 주에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저의 어머니 쾌차를 비는 기도를 드릴거라고 합니다.


안 그래도 돼. 공부나 열심히 혀~


아끼지 말고 먹고 싶은거 있음 다 사 묵고....




고맙다.


짧지 않은 세월, 내가 동남아와 끈을 놓지 않은 계기가 되어 준 것도 고맙고


비 온 뒤 찬란하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무지개처럼 잘 자라줘서 고맙구나.


덕분에 쐬주가 달달허니 술술 넘어가는 것도 고맙다.




토요일 새벽,


한국을 좋아하는 태국 미녀가수 '남차'가 부른 '락 툭 르두(언제나 당신을 사랑합니다)' 띄워드립니다.


 


3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추천한 회원 보기

댓글목록 14

진빠핵펀치님의 댓글

무지개 처럼 아름다운 인연이군요...

정말 키다리 아죠씨 ㅎㅎ 존경존경이삼...

쭐라롱꼰 대학 검색해보니 뜨아...

이모티콘

정말 멋진데욤.

경회루 같이 생긴 누각도 있고  ㅎㅎ

그나 저나 지훈이 할머니 빠른 쾌차를 기원합니다...

축하합니다. 첫댓글 포인트 1GOLD를 획득하였습니다.

귀요미지훈님의 댓글의 댓글

땡큐 베리고맙3333

초등, 중등, 고등, 대학까지 태국 학교는 전통양식을 본 따 만들어진 건물이 많삼.

그리고 초중고 학생의 경우, 매주 하루는 전통 복식...우리로 치면 한복을 입고 등교해야 하삼.

이런거는 우리도 도입하면 참 좋을거 같삼.

예전에 다른 대학 몇 군데는 가봤는디

정작 쭐라롱꼰은 못 가봐삼

다음에 말 안 하고 몰래 가서 놀래켜야겠삼 ㅎㅎ

헬로가영님의 댓글의 댓글

신의한수님의 댓글

이야기 그 자체가 무지개
기욤미님이랑 조금이나마 아는 사이라는게 너무 좋아요!!!

아울러 대자대비 하신 기욤님 어머님의 쾌차를 빕니다

귀요미지훈님의 댓글의 댓글

저두유~^^

쾌차를 빌어 주셔서 감사해유~

이모티콘

아이유짱님의 댓글

왼손으로 아이들 공부를 가르치고 오르손으로 여자들 궁둥이를 만지는 형아이모티콘

헬로가영님의 댓글의 댓글

저도 선생님 유니폼 부분에서 그 생각을...

귀요미지훈님의 댓글의 댓글

헠ㅋㅋㅋ

단 한 줄로 인물묘사를 정확하게 해버리는...역시 작가 삼촌이셔~

인왕님의 댓글

날이 더운건가 했더니 여기서 이렇게 따땄한 얘기를 써놓고 계셨네유.
역쉬 멋쟁이시랑께~이모티콘

귀요미지훈님의 댓글의 댓글

헬로가영님의 댓글

아 진짜 이 오빠 썰들 때문에 내 썰들은 B급이 되어버림...

귀요미지훈님의 댓글의 댓글

꽃날님의 댓글

아. 좋네요.
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에요.

귀요미지훈님의 댓글의 댓글

꽃날삼촌 맴을 따뜻하게 맹글었다니

오늘도 보람찬 하루~
전체 808 건 - 9 페이지
제목
레벨 곧휴가철이다 162 0 0 2022.05.17
레벨 곧휴가철이다 160 0 0 2022.05.17
레벨 귀요미지훈 198 2 0 2022.05.17
레벨 헬로가영 203 0 0 2022.05.14
레벨 아이유짱 183 1 0 2022.05.13
레벨 진빠핵펀치 191 2 0 2022.05.10
레벨 진빠핵펀치 189 2 0 2022.05.09
레벨 귀요미지훈 196 2 0 2022.05.08
레벨 축구게시판 159 0 0 2022.05.08
레벨 귀요미지훈 193 1 0 2022.05.07
레벨 귀요미지훈 168 1 0 2022.05.07
레벨 귀요미지훈 151 1 0 2022.05.06
레벨 진빠핵펀치 204 2 0 2022.05.05
레벨 귀요미지훈 195 1 0 2022.05.05
레벨 귀요미지훈 151 2 0 2022.05.04
레벨 진빠핵펀치 178 1 0 2022.05.02
레벨 귀요미지훈 157 0 0 2022.05.01
레벨 귀요미지훈 149 0 0 2022.05.01
레벨 헬로가영 167 0 0 2022.04.30
레벨 귀요미지훈 277 3 0 2022.04.29
레벨 아이유짱 169 0 0 2022.04.28
레벨 귀요미지훈 199 3 0 2022.04.28
레벨 귀요미지훈 192 1 0 2022.04.26
레벨 헬로가영 234 0 0 2022.04.26
레벨 인왕 173 1 0 2022.04.25
레벨 헬로가영 159 1 0 2022.04.24
레벨 귀요미지훈 181 3 0 2022.04.23
레벨 헬로가영 203 0 0 2022.04.23
레벨 비왕 199 1 0 2022.04.22
레벨 비왕 144 1 0 2022.04.20
레벨 헬로가영 182 0 0 2022.04.19
레벨 귀요미지훈 196 1 0 2022.04.18
레벨 진빠핵펀치 219 3 0 2022.04.16
레벨 귀요미지훈 177 1 0 2022.04.15
레벨 헬로가영 138 1 0 2022.04.15
레벨 아이유짱 178 2 0 2022.04.15
레벨 귀요미지훈 178 2 0 2022.04.15
레벨 신의한수 171 3 0 2022.04.14
레벨 꽃날 165 2 0 2022.04.13
레벨 아이유짱 183 2 0 2022.04.12
레벨 꽃날 216 2 0 2022.04.11
레벨 진빠핵펀치 253 1 0 2022.04.09
레벨 헬로가영 383 2 0 2022.04.07
레벨 헬로가영 160 0 0 2022.04.06
레벨 활인검심 178 0 0 2022.04.06
레벨 헬로가영 246 2 0 2022.04.06
레벨 아이유짱 469 3 0 2022.04.05
레벨 진빠핵펀치 332 2 0 2022.04.04
레벨 귀요미지훈 180 1 0 2022.04.01
레벨 헬로가영 168 1 0 2022.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