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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4.10 투표를 ‘자본왕국’ 종식의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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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한뜻으로 '개 쓰레기'부터 제거한 다음

선거정치 한계를 넘어 새 세상을 열어나가자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영화 <설국열차>는 프랑스 만화영화를 봉준호 감독이 각색하고 감독한 것(2013년)이다. 원래 이 영화의 배경은 지구온난화라는, 지구 전체에 닥친 기후재앙이다. 이른바 ‘과학기술 맹신주의’에 빠진 이들은 ‘지구 공학’으로 이런 문제도 쉽게 해결한다고 믿는데, 이 영화에서 그 진면목이 드러난다. 과학기술 맹신자들은 지구온난화를 특수한 냉각제(CW-7)를 통해 한방에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이 냉각제를 지구 전체에 대대적으로 뿌렸는데, 지구를 적절히 식힌 게 아니라 그야말로 ‘냉동’시키고 말았다. 그래서 ‘설국’ 세상이 탄생한다! 이제 사람들은 이 냉동 지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 탈출을 하는데, ‘설국열차’란 바로 이 마지막 생존자들을 태운 일종의 구명보트다. 이 열차는 생존자들을 태우고 지구가 다시 따뜻해져 생명체가 살 만한 수준이 될 때까지 17년 넘게 지구 전체를 달리고 또 달린다.

시스템 유지 위해 학살도 마다않는 머리칸의 구세주

흥미롭게도 이 설국열차의 머리칸, 중간칸, 꼬리칸은 ‘계급’별로 분단돼 있다. 머리칸은 최상층, 중간칸은 기술자와 지식인, (더럽고 좁은) 꼬리칸은 빈민들(무임승차자들)이 타고 있다. 꼬리칸 사람들은 어른이건 아이건 열차의 안정적 운행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조달하는 수단일 뿐이다. 중간에는 중산층 이상 부자들이 타고 있고 고급 식사까지 제공되며 그 자녀들의 교육도 이뤄진다. 머리칸에는 최고 우두머리인 윌포드와 메이슨 총리가 자리를 잡고 열차 시스템 전반을 관리한다.

머리칸의 핵심 가치는 ‘영원한 엔진’이다. 이 엔진이 잘 작동해야 생존자들의 삶을 영원히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배자 윌포드는 이 엔진 및 열차 시스템 전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자기야말로 생존 인류의 구세주라 확신한다. 그래서 설국열차 시스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인위적인 '인구 조절' 같은 잔혹한 일도 필수라 믿는다. 또 머리칸 엔진을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 꼬리칸에서 다섯 살짜리 아이(티미)를 엄마 품으로부터 빼앗기도 한다. 윌포드의 심복 프랑코는 꼬리칸 사람들을 잔인하게 탄압, 살해한다. 꼬리칸 사람들의 70% 이상을 죽여서라도 인구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윌포드 다음 2인자인 메이슨 총리는 아이를 빼앗겨 절규하는 앤드류에게 경고한다. “네 자리를 지켜라. 기차에서 원하는 질서를 지켜라.” 자식을 빼앗긴 그는 분노해서 신발을 집어던졌는데, 가혹한 추위에 창밖으로 팔을 내미는 고문을 당해 오른팔을 잃는다. 메이슨은 그 신발을 앤드류의 머리에 올려놓고 또 말한다. “나는 머리고 너희들은 발이다. 신발을 머리에 쓸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한 칸씩 전진하며 꼬리칸 사람들이 발견하게 되는 것들

상황이 이쯤 되면 표층의 불만을 넘어 체제 반란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커티스가 이끄는 빈민 반란군은 갖은 고생과 희생을 감수하며 한 칸씩 전진한다. 머리칸 엔진실을 장악해 지도자를 교체하려는 것! 그 과정에서 이들은 열차의 보안설계자인 남궁민수를 감옥에서 빼내 앞 칸으로 가는 문을 열어 달라 요구한다. 남궁민수는 문을 열 때마다 ‘크로놀’(마약성 + 인화성 물질) 두 개씩 달라고 요구한다.

이들은 결투를 벌이며 빈민의 유일한 식량인 단백질 블록 공장에 도착한다. 공장의 커다란 믹서엔 단백질 원료가 분쇄되고 있는데, 놀랍게도 ‘스마트’하게 배양되는 바퀴벌레다. 으악!

더 앞쪽 칸에는 휘황찬란한 수족관이 있고, 스시를 만드는 주방과 고급 식당도 있다. 중간칸과 머리칸의 파워엘리트들은 그렇게 유복하게 산다. 세상의 불평등은 (세상을 탈출한) 설국열차 안에서도 재현되고 있었다. 중간칸 어디쯤, 아이들 교실에 도착한 커티스 반군들은 윌포드와 엔진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 노래를 듣는다. 아이들은 찬양 노래와 함께, 질서에 대한 반항의 대가가 무엇인지 철저히 교육받으며 순종형 인간으로 세뇌 당한다.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커티스 일행은 열차의 머리칸 엔진실에 이른다. 1인자 윌포드와 최후의 대화를 하는 가운데 커티스는 충격적 비밀 두 가지를 알게 된다. 하나는 자신이 존경하던 꼬리칸의 성자 길리엄 역시 윌포드와 내통하는 파트너란 사실이었다. 둘째는 자신의 반란조차 열차의 인구 균형을 맞추기 위해 무력 충돌을 조장한 윌포드의 큰 그림(big picture)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시스템 전체가 문제없이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합법적으로’ 인명을 학살할 계기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빈민의 불만이 반란으로 발전하게 어느 정도 허용하는 것, 그 진압 과정에서 ‘합법적으로’ 인구 조절을 꾀하는 것, 이것이 큰 그림이었다!

바로 그 ‘현타’의 순간, 커티스와 남궁민수는 성냥불로 ‘크로놀’을 터뜨려 설국열차의 옆문을 열고 탈출한다. 열차 폭발과 동시에 열차가 탈선하고 어마무시한 산사태가 나며 대파국이 닥친다. 여기서 남궁민수의 딸 요나와 엔진실 부품으로럼 일하던 티미는 다행히 살아남는다. 커티스와 남궁민수가 (마치 권정생 선생의 ‘엄마 까투리’처럼) 요나와 티미를 끌어안아 보호한 뒤 산화했기 때문! 마치 ‘차세대’ 인류를 이어나갈 상징처럼! 그리고 저 높은 곳 빙산 뒤로 북극곰이 올라가는 장면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반란의 순간에도 머리칸과 내통하는 꼬리칸 거물

이 영화는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로 인한 인류의 재앙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구명보트 격인 설국열차 안에서도 상중하 계급 구조가 그대로 재현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층의 불만이 쌓이고 쌓이면 마침내 민초들의 반란이 일어나 상층부를 갈아치울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까지 상기한다. 열차는 수평으로 달리지만 열차를 사회 시스템의 상징으로 본다면 사실상 수직 구조를 의미한다. 결국, 기층 민중이 반란을 일으켜 새로운 지배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 시스템의 원리 자체(중상층이 누리는 기득권은 하층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라는 점)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면 또다시 원점 회귀에 불과하다는 교훈을 얻는다.

그러나 이 영화의 백미는 열차의 머리칸과 꼬리칸의 거물들이 서로 긴밀히 소통하며 시스템 전반의 균형과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시스템이 아무리 차별적이고 억압적이며 착취적이라 할지라도 이 근본 원리를 문제 삼지 않은 채 그저 주어진 시스템의 균형과 조화, 질서와 안정만 추구했다는 얘기다. 특히, 머리칸과 꼬리칸이 은밀히 소통하면서 말이다.

흥미롭게도 최근 우리는 이와 상당히 유사한 장면을 목격한 바 있다. 2016년 가을부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전국을 달구는 촛불항쟁이 있었고, 마침내 2017년 3월, 박근혜가 구속되었다. 그 이유는 뇌물수수, 직권남용, 공무비밀 누설 등 13개 혐의였다. 당시에 바로 그 수사를 담당했던 특별검사가 바로 박영수, 윤석열, 한동훈 등 특수부(정경유착이나 거물급 비리 담당) 출신 검사들이었다. 수년 간 재판 끝에 박근혜는 2021년 1월 국정농단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등(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 원, 추징금 35억 원을 확정 받았다. 이에 앞서 2018년 11월엔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공천 과정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된 상태였다.

윌포드-길리엄 관계 연상시키는 한동훈의 박근혜 방문

따라서 징역 22년과 벌금 약 200억 원 등이 박근혜의 죗값이었는데, (옥살이 불과 4년 9개월 뒤) 2021년 12월, 박근혜는 특별사면, 복권되었다. 돈도 돈이지만, 17년 이상의 ‘자유’를 특별 선물한 셈! 당시 사면을 결단한 문재인 대통령(당시 총리는 이낙연)은 ‘국민 통합’과 ‘건강 악화’를 고려했다 한다. 실은 이것도 매우 이상한 일이지만, 더욱 이상한 것은 2024년 4.10 총선을 앞둔 2024년 3월 26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대구에 사는 박근혜를 직접 방문, 면담을 한 사실이다. 한동훈은 2018년 2월 국정농단 사건 1심 결심 공판 당시 검사였는데, “대통령의 직무권한을 사유화함으로써 국정을 농단하고 헌법가치를 훼손했다”며 박근혜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한 당사자다. 그랬던 과거의 검사가 오늘 여당 우두머리 자격으로 과거의 지배자이자 범죄자를 만나 “국정 전반과 현안들, 그리고 살아오신 얘기 등 여러 가지에 대해 굉장히 좋은 말씀을 들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소통을 했다.

 

물론, 복잡한 정치적 계산들이 깔려 있겠지만, 어째 매우 이상하지 않은가? 머리칸의 윌포드와 꼬리칸 길리엄의 관계를 박근혜와 한동훈[또는 한동훈과 박근혜]의 관계에 그대로 포갤 순 없지만, 지배자에 대한 반역이라는 관점에서 두 당사자 간의 절묘한 소통이 기괴하게 느껴진다. ‘설국열차’에서 머리와 꼬리의 은밀한 소통이 결국 (불평등과 지배, 착취를 특징으로 하는) 시스템 전반을 교묘히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한동훈과 박근혜의 소통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것은 현재 우리들 역시 불평등과 지배, 착취를 특징으로 하는 시스템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검찰공화국’은 사실상 ‘검찰왕국’이 돼 가고 있으며, 이는 결국 ‘자본왕국’의 하위 체제일 뿐이다. 만일 우리가 다가오는 선거(들)에 진취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검찰왕국 내지 자본왕국을 종식하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대중적’ 수단이란 점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다. 각종 선거가 아무리 ‘민주적’으로 이뤄지더라도, 그리하여 정치행정의 겉모양이 권위주의에서 자유주의, 복지주의, 환경주의 등으로 얼굴을 바꾼다 하더라도 그 아래쪽의 근본 체제는 여전히 자본주의(자본왕국)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기저의 원리, 착취와 억압, 타자의 희생을 전제로 잘살기를 추구하는 게임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권위주의적 ‘검찰왕국’을 자유주의적 ‘민주왕국’으로 바꾼들, 우리는 또다시 배신을 맛보게 된다. 그 역시 여전히 ‘자본왕국’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가 여러 차례 반복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달라야 한다. 일단 ‘쓰레기’ 청소를 먼저 하고, 다음엔 이런 논의들을 왕성하게 벌이면서 완전히 새로운 삶에 대한 상상력을 맘껏 펼쳐보자. 요컨대, 여태 우리는 자본주의의 권위주의적 형태를 수차례 경험했다. 그리고 간간이 자본주의의 자유주의적 형태도 맛보았다. 그 사이에 자본주의의 복지주의적 형태나 환경주의적 형태까지 조금씩 맛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자본주의가 우리네 삶을 장악하고 있다. 이걸 놓치면 안 된다. 기저의 자본주의를 민본주의로, 생명주의로 바꾸지 않으면 또다시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그래야 참된 민주주의다.

‘개 쓰레기’들 치운 후 열어가야 할 세상에 대하여

‘설국열차’는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열차 시스템 전반은 민주주의 (부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민주주의, 즉 ‘민초들이 스스로 통치하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굳이 1년에 600조 원 이상의 혈세를 내며 대통령부터 장관들, 국회의원들, 판검사들, 시장이나 군수들, 지방의원들을 다 먹여 살리느라 (게다가 영수증도 필요 없는, 수천억 원의 특별활동비까지 갖다 바치느라) 피, 땀,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들이 진정 풀뿌리 민초들의 ‘심부름꾼’들이라면 그 많은 봉급도 필요 없고 그 많은 숫자도 필요 없지 않을까? 만일 우리가 마을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말한) ‘마을공화국’의 주인공들로 재탄생한다면, 그리하여 정치경제, 사회문화, 교육종교, 언론교통 등 우리네 삶의 문제 전반에 대해 우리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더 이상 “파 한 단에 875원” 같은 코미디를 벌이지 않아도 될 게 아닌가? 만일 우리가 지배 엘리트들을 위해 혈세를 내는 ‘봉’이 되기를 즉각 중단한다면 “마피아도 여성이나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개 쓰레기 같은” 방구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다. 바로 이런 토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4월 10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투표하자. 그리하여 권력‧재물 중독자들과 부정부패한 자들을 사그리 청소하고 그 이후엔 싱그러운 민주주의의 꽃향기를 음미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논하기 시작하자.

 

어차피 우리네 현실은 한계가 많은 (거대 양당 중심의) 선거판이다. 일단 한 마음 한 뜻으로 “개 쓰레기 같은” 방구 소리 충만한 자들을 제거한 뒤에 ‘선거 정치’가 가진 한계를 넘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열어 나가자. 이는 ‘설국열차’에서처럼 또다시 ‘지배자의 교체’만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즉 또다시 ‘선거의 배신’이라는 쓴맛을 보지 않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것만이 검찰왕국과 자본왕국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그것만이 설국열차의 마지막 같은 파국을 예방할, 슬기로운 길이다.

만일 (단순한 권력자 교체에 만족하지 않고) 그런 근본적 토론과 모색이 진지하게 이뤄진다면, 설사 설국열차의 마지막 같은 파국이 실제 닥친다 하더라도, 마치 요나와 티미 같은 차세대 아이들이 꽤 많이 살아남아 다음 세상을 완전 ‘다르게’ 이어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번 선거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런 진지한 질문이 필요하다. 과연 우리는 “내 자리만 지킬 것”인가, “머리칸을 정복할 것”인가, 아니면 “옆문을 열고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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