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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공작’이 살려낸 ‘흡혈귀 피노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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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한국 관객들도 목 물리지 않도록!

오동진 영화 평론가오동진 영화 평론가

한국 시각 11일 오전 8시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릴 제96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가장 도발적이면서도 가장 혁신적인 작품은 칠레 흑백영화 ‘공작’이다. 스페인어 제목으로는 ‘엘 꼰데(El Conde)’, 영어로는 ‘Duke’, 한자로는 ‘公爵’이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에서 고작 촬영상 후보에 오른 정도지만 시대와 세상에 대한 고찰이 가장 명석한 작품이다. 칠레의 독재자이자 세계적으로 잔인한 살인마 랭킹 톱5 급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사실은 알고 보니 흡혈귀, 곧 뱀파이어였다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피노체트는 지난 250여 년 간 사람의 피를 빨아 먹으면서 살아 왔다는 이야기인데 생각해 보니 뱀파이어가 흡혈을 하는 행위나 독재자들이 민중의 고혈을 빨아 먹는 행위나 정치적으로는 같은 맥락 아닌가. 영화 ‘엘 꼰데’ 곧 ‘공작’은 그런 흐름으로 보면 섬뜩하면서도 웃기고, 깔깔 웃으면서도 금방 심각한 표정을 짓게 되는, 그런 이야기이다.

섬뜩한 독재자를 깔깔 조롱하는 심각한 아카데미 후보작

(우리가 알기로) 분명한 실존 인간 피노체트가 흡혈귀라는 설정은 분명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흡혈귀는 죽지 않는다. 가슴에 은십자가를 대못처럼 박아 넣어야만 죽는데 그게 웬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흡혈귀 피노체트는 지금도 어디엔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야말로 끔찍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칠레에, 아니 지구상 어디엔가 피노체트 같은 짐승만도 못한 독재자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오싹해진다. 이 영화는 그렇게 온탕과 냉탕을 오간다.

 

신세대 관객들에겐 피노체트가 어떤 인물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 부분을 구태여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중간중간 극중 인물들의 대사로 짐작할 뿐이다. 피노체트는 1973년 민주정부였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쿠데타로 전복시키고(피노체트 군대가 대통령궁을 탱크로 밀고 들어가 아옌데를 죽이는 장면은 실록으로 남아 있으며 영화 ‘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수천 명의 국민을 좌익과 무정부주의자로 몰아 살해했다. 스터디움 경기장에 모아 놓고 기관총을 난사해 죽이거나 학생운동가들을 데려다가 잔혹하게 고문하고 강간한 후 헬기에 싣고 나가 바다로 그냥 던져 버리기도 했다. 피노체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독재자로 역사에 남겨져 있지만 대부분의 압제자들이 그렇듯이, 전두환이 그렇듯이 천수를 누리다 자연사했다. 2006년 사망할 때 그의 나이는 무려 89세였다.

 

영화 ‘공작’은 흡혈귀 피노체트(하이멜 바델)가 사망한 척, 장례를 치른 후 외딴 섬 폐가에서 아내인 루시아, 충직한 하인인 표도르와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섬에 다섯 남매가 찾아 오는데, 자식들은 이번 기회에 아버지를 진짜 죽이되, 독재자가 은닉해 놓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찾아서 가로채는 것이 목적이다. 아버지를 죽이는 명분은 아버지조차 스스로 이제 그만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자위한다. 한편 교회는 교회대로 어떻게 알았고 또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퇴마사 수녀 카르멘(파울라 루신저)을 피노체트 일가에 파견한다. 카르멘은 회계사로 위장해 피노체트 가문에 접근한다. 그녀는 피노체트의 재산을 교회로 가져 오라는 명령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이 노인 흡혈귀에게 물리게 되고 그의 여자가 된다. 수녀는 피노체트에게 욕정을 배운다.

좌파 척결을 평생 목표 삼은 흡혈귀 ‘마거릿 대처’ 아들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극 전체가 어떤 여인의, 계속되는 나레이션으로 이어진다. 영화 속에 화자(話者)를 배치하는 건 영화 자체에 상당히 문학적이고 연극적인 느낌을 불어 넣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이런 연극적 요소는 늘 ‘소격 효과(疏隔效果)’를 불러 일으키는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작품은 현실이 아니고 연극일 뿐이라는 거리감을 중간중간 일으키고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리얼리티를 배가 시킨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만들어 내는 ‘비현실성의 현실성’이다. 피노체트가 흡혈귀라는 얘기는 환상에 불과하지만 결국 피노체트 같은 독재자는 여전히 도처에서 호의호식하며 국민의 피를 빨아먹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만든다.

가장 웃기는 대목은 피노체트의 가계(家系)이다. 영화 속 피노체트는 1766년 2월 16일생이고(실제로는 1915년생) 원래 이름은 클로드 피노슈였다. 프랑스 혁명 당시 왕당파 군인이었고 마리 앙투와네트의 목이 길로틴에서 잘리는 것을 보고 죽을 때까지 혁명이라는 것, 혁명가라고 하는 인간들, 좌파들, 무정부주의자들에 맞서 싸울 것을 결심하고 해외로 나간다. 처음엔 러시아와 알제리에 갔지만 나중에는 남미로 왔고 최종적으로 칠레 군대에 들어 갔다. 이름도 피노체트로 바꾼다.

그렇다면 피노체트는 어떻게 뱀파이어가 됐을까. 누구에게 물렸을까. 알고 보니 그는 흡혈귀의 아들이었다는 얘기이다. 엄마는 프랑스 시골(항구 근처)의 포도밭에서 일하던 농사꾼 처녀 마거릿이었는데 뱃사람 남자 스트리고이에게 강간당한 후 목을 물려 뱀파이어가 된다. 그리고 아들을 낳는데 그 아들이 피노슈이다. 마거릿은 포대기에 싸인 갓난 아기를 교회에 버리고 영국으로 간다. 그리고 자신 역시 흡혈귀가 돼 오랜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녀의 영국식 이름은 마가렛 대처이다. 이 대목에서는 진정으로 폭소가 터진다.

끔찍한 피노체트 존재 넘어 독점, 독재의 세상 고발한 감독

영화에서 마가렛 대처가 영국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기자들의 일문일답에 답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얼마나 투철하면서도 동시에 냉소적인 역사관을 지녔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처는 런던 망명 중 체포된 피노체트가 석방돼야 하며 (그에 대한 여러 보호막이 마련된)칠레 본국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면서, 자신은 그가 포클랜드 전쟁 때 보여 준 우의(영국의 아르헨티나 침공을 지원하기 위해 칠레 영공을 개방)를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피노체트는 1998년 권좌에서 물러난 후 병치료 명목으로 사실상 영국으로 도피했으며 그의 망명 행각을 도운 사람이 바로 마거릿 대처였다. 두 사람은 신자유주의 신봉자로서 정치적 입장을 같이 해 왔다. 대처는 피노체트의 야만적인 인권탄압을 언급하지 않았다.

 

어쨌든 영화에서 대처 역을 맡은 배우 스텔라 고넷은 싱크로율 100%에 가깝게 대처를 연기한다. 피노체트 역의 하이메 바델 역시 끔찍함 그 자체였던 피노체트를 완벽하게 연기해 낸다. 영화 ‘엘 꼰데’, ‘공작’은 피노체트라는 괴물의 존재를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지금 세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숱한 정치 사회 경제적 난맥과 독점, 독재 행위를 자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운 작품이다. 넷플릭스는 너무나 많은 작품을 공개하다 보니 자신들의 영화가 얼마나 혁명적인지, 때로는 얼마나 뉴라이트적이고 극우적인지를 모를 때가 있다. 넷플릭스의 기묘한 특징이다. ‘엘 꼰데’는 넷플릭스가 전세계에 배급, 유통하는 영화이다.

감독인 파블로 라라인은 생소한 이름같지만 다이아나 왕세자비 얘기를 그린 ‘스펜서(2022)’를 비롯해, 재클린 케네디 얘기를 그린 ‘재키(2017)’, 파블로 네루다의 생애를 그린 ‘네루다(2017)’ 등 굵직한 정치 역사 영화를 만들어 온 인물이다. 파블로 라라인이 만든 ‘판타스틱 우먼(2017)’은 트랜스젠더 얘기였고 ‘글로리아(2013)’란 영화는 노인들의 섹스와 사랑의 얘기였다. 늘 새롭고 도발적인 소재를 찾아 나서는 감독이라는 얘기이다.

 

한국 관객들도 목 물리지 않도록 조심할진저!

영화 ’공작’의 주제의식은 영화 종반에 분명히 드러난다. 피노체트가 원한 것은 단순한 살인이나 학살이 아니었다. 잔인한 살인극을 넘어 모두를 ‘탐욕의 짐승들’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목적이기도 하다. 이 정도쯤 되면 영화 ‘공작’이 갖는 보편적 서사의 의미를 포착하게 된다. ‘우리 모두를 탐욕의 무리로 만드는 것.’ 그건 비단 피노체트와 칠레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었고 지금 이곳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 보시길. 그 많은 정치인들 중에 반드시 흡혈귀가 있을 것이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한국 관객들에게도 평소 목을 물어 뜯기지 않게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P.S. 원래 브람 스토커 원작의 ‘드라큘라 백작’은 이단아, 반항아, 혁명가를 상징했다. 그는 19세기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성적 억압(코르셋으로 상징되는)을 여인의 목(몸)에 자신의 이빨(몸)을 박아넣는 행위로 여인들, 사람들을 해방시키려 한 존재다. 세월이 지나면서 드라큘라의 그런 정치성이 소멸되고 오직 악마의 상징으로만 남았다. 영화 ‘공작’도 드라큘라의 전사(前史)는 무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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