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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리고 아웅’조차 안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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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호 만화가
권창호 만화가




우리는 살면서 싫든 좋든 ‘눈 가리고 아웅’ 해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은 일년에 한두 번 정도, 많으면 몇 개월에 한두 번 정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살아가리라 믿는다. 너무 잦으면, 문제가 있는 거다. 반성하자.

윤동주가 ‘서시’에서 간절히 소망한 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란, 글쎄다, 나 같은 범부에겐 불가능에 가깝다. 한 점은커녕 일주일에 절반은 ‘이불킥’을 하느라 밤잠을 설칠 정도니 말 다했다.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거나 모르는 척 ‘눈 가리고 아웅’할 때가 있다. 집단적인 거짓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인 ‘눈 가리고 아웅’에는 나름 순기능이 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이 설령 최선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토대까지 무너지는 것은 이심전심으로 막자는 것이다.

“산타는 없어, 멍청아!” 동심을 깨버린 이명박

일테면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생각해 보자. 착한 행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어린이가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놓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한껏 부푼 기대심리는 지켜주어야 마땅하다. 어린아이에게 “산타할아버지는 없어!”라고 이야기하는 어른은, 어떤 의미에서 참 나쁜 어른이다.

2008년 11월 G20금융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워싱턴특파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한미FTA와 관련해 “오바마 정권이 들어온 이후 정리된 정책이 나왔을 때 우리가 얘기하는 것이다.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나. 그렇지 않은가. 표가 나온다면 뭐든 얘기하는 것 아닌가. 세계 어느 나라든지”라고 말했다.

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일종의 커다란 파열음을 느꼈다. ‘공약(公約)=공약(空約)’이란 말은 정치권을 향한 오래된 비판이지만 이것이 정치인의 입을 통해 나오면 안 되는 거였다. 정치인이 표를 위해 선거 때 무슨 말이든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다들 눈치껏 알고 있던 공공연한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정치인의 입을 통해 공식화하면 안 된다. 사회적 합의의 울타리가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워싱턴 한복판에서 특파원들에게 “산타는 없어! 멍청아!”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이해당사자들의 첨예한 대립을 중재하다가 그 버거움을 토로하며 내뱉은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노무현의 한탄은 ‘가벼움’으로 치부하며 “싫으면 내려오라”고 집요하게 공격해댄 언론은, 이명박의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냐”는 말엔 적극적인 평가가 없었다.

최근 우리 사회를 가까스로 지탱하던 사회적 ‘눈 가리고 아웅’이 무너지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 1월 26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등 47개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죄인데, 재판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개입 사실 자체는 인정했음에도 애초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으므로 남용할 직권도 없으니 무죄라는 논리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재판개입은 인정하면서 무죄라니, 귀신이 시켰느냐”고 반발했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결코 공명정대하지 않다’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우리 사회 시스템이 무너질까봐 차마 공식화하지 못한 ‘무전유죄, 유전무죄’(또는 무권유죄, 유권무죄)를 사법부 스스로 판결을 통해 공식화한 것이다.

“판사가 또라이일 수 있다” 공공연히 드러낸 ‘양승태 귀신’

‘바이든 날리면’ 재판은 또 어떤가.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과학적으로 입증이 불가능하니 MBC는 정정보도를 해야 한단다. ‘과학적으로 입증 불가능’한데 대체 뭐라고 정정해야 할까. 사법부는 우리 사회 시스템 최후의 보루가 아닐 수 있으며, 판사 개인은 얼마든지 또라이일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이렇게 사법부 스스로 공공연히 드러내도 되는 걸까. 디올백을 받은 것은 박절하지 못해서라고 이해해도 될까. 소방헬기를 이용한 것과 디올백 받은 것을 서로 퉁치고 넘어가도 될까.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이미 십수년 전 ‘삼성X파일’ 사건을 통해 재벌이 어떻게 판검사들을 ‘관리’해왔는지 똑똑히 목도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처벌은 엉뚱하게도 고 노회찬 의원이 받았다. 그때 이미 이 땅의 공동체를 지탱하던 사회적 신뢰의 토대가 무너졌다고 봐야 옳다.

다들 알지만 사회 시스템의 붕괴를 막고 한 발짝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갈 시간을 벌기 위해 짐짓 모르는 체 쉬쉬하며 ‘눈 가리고 아웅’ 해왔던 것들이 이제 무엇 하나 남지 않았다. ‘우리’를 연결하고 지탱해 줄 신뢰자산이 사라지면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각자도생’ 이리라.

이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눈 가리고 아웅’은 나 정도면 그럭저럭 잘 생긴 거 아니냐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사는 것뿐이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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