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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 과연 민주주의가 있기는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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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의 나라 19] 어떤 권력기관이든 시민 통제 받아야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몇 년 전에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국회 추천 민간위원을 포함하는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그러자 사법부의 의사결정을 사법부가 아닌 국회에서 상당 부분 관여하는 방식이어서 권력분립의 원리에 반한다는 반론이 나오는 등 큰 논란이 빚어졌다.

우리 사회에서 사법부에 대한 대중적 불신은 대단히 높다. 그러나 그러한 사법부에 일반 사람들은 그 어떤 견제 방법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사법부 법관 누구도 국민의 직접 선출로 구성되지도 않으며, 법원행정처는 법관들에 의해 철저히 독점되어 있다. 이렇듯 사법부를 견제할 장치가 철저히 결여된 조건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태도 발생한 것이다.

오늘날 사법부 법관 선출이나 사법행정에 대한 시민과 의회의 관여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다. 유럽사법부협의회(ENCJ: European Network of Councils for the Judiciary)는 유럽에서 법관의 인사 특히 임명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가장 보편적인 기구인 사법위원회(Councils for Judiciary)의 구성에 내각 각료나 전현직 의원이 참여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그러나 유럽사법부협의회는 사법위원회에 민간위원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럽사법부협의회는 “민간위원들은 시민들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사법부의 역할을 강화하며 사법부에 보다 많은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측면만이 아니라, 사법부 내에 실질적으로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한다고 인식되는 이기심이나 자기보호심리, 또는 자기지시성(self-referencing) 등을 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그 존재 의미가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민간위원들이 가진 법외의 분야에 관한 전문지식이나 경력은 사법부에 대한 좋은 투입이 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과연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이기는 한가?

일제 강점기의 작곡가 김순남은 극악한 일제 식민지 시절 유일하게 남은 자유라곤 손바닥에서 탱자를 굴릴 수 있는 것밖에 없는 상황에서 '탱자'라는 곳을 작곡하였다. 지금 우리에게는 손가락으로 SNS(이 ‘SNS’란 용어는 잘못된 일본식 영어로서 정확한 용어는 ‘소셜 미디어’이다) 놀이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세기 87년 우리는 겨우 직선제 하나를 얻은 것에 불과했다. 이는 야당 정치권을 지배세력의 하위 파트너로 포섭하는 과정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후 정치권, 관료 그리고 각종 이익집단의 3각 동맹으로 국민은 국가권력 시스템 밖으로 철저히 배제되었다. 국민에게 총을 주었으나 그 총은 장난감 총이었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이는 내용 없는 빈껍데기의 ‘위장 민주주의’에 불과했다. 국민은 국가의 주인이면서도 정작 국가 권력 시스템에 대한 아무런 통제 장치도 갖지 못한 채, 다만 그것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여기며 살았다.

이렇게 하여 지금 대한민국에는 피치자 혹은 시혜의 대상으로서의 ‘신민(臣民)’이 있을 뿐 민주주의 주체로서의 ‘시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정치적 자유란 개인의 인권 보장을 넘어 시민의 능력과 공공사회 의식, 평등을 선행조건으로 하는 정치적 참여를 통하여 달성된다. 지금 여기 정치적 자유와 시민의 권리 그리고 민주주의는 없다. 검찰의 권력남용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아무리 요구해도 검찰은 철저히 모르쇠이다. 정당명부제나 결선투표제 그리고 비례대표 확대 등 시민들의 다양한 민의 반영 요구는 기득권 정당에 의하여 줄곧 거부되어 왔다. 감사원 독립에 대한 대중적 요구 역시 들은 체 만 체이다.

대중들에게 유일하게 허용되고 있는 권리는 선거 당일에 한번 투표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몇 년에 한 번 있는 선거와 독점적인 두 정당이 존재한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민주주의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2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대비 수검표 시연이 진행되고 있다. 2024.1.22. 연합뉴스

2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대비 수검표 시연이 진행되고 있다. 2024.1.22. 연합뉴스


이 땅에 ‘국가 신민(臣民)’의 국민만 있을 뿐, ‘시민’은 없다

우리 사회에서 국가 운영 체계에 대한 시민의 통제 시스템은 철저히 결여되어 있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 사회에 국가와 정치 그리고 관료는 있지만 ‘시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하는 날 하루 투표하는 것 이외에 시민의 권리는 거의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의 혈세로 흥청망청한 LH 복마전 사태에 대해서도 정작 시민들은 아무런 대응 수단이 없었고, 검사들이 이른바 '99만 원 쪼개기 수법'의 불기소 세트로 자기 편 술 접대 검사를 불기소해도 시민들은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어떠한 권리도 주어진 것이 없다. 속수무책(束手無策), 그야말로 손발이 묶인 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시민들의 참여에 대한 요구는 거의 모든 경우 위헌이나 현 사법체계에 대한 도전과 훼손으로 낙인찍힌다.

어느 권력자든 어떤 권력기관이든 시민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나라는 민주주의일 수 없다. 이 나라의 국가 시스템의 운영은 정부, 국회 그리고 관료 및 검찰 등 소수 엘리트에 철저하게 독점되고 있다. 정치권은 진입의 장벽을 허물기는커녕 정치신인과 소수 야당의 진입을 봉쇄하는 장벽이 갈수록 더욱 철벽화한 채 ‘그들만의 리그’만을 확대재생산해 왔다. 관료들의 철밥통과 진입 장벽 역시 철옹성과도 같이 시민들을 배제한 채 우뚝 버티고 있다. 무소불위 검찰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주체가 되어야 할 시민은 정작 국가운영 시스템에서 철저히 배제된 채 단지 지배 및 통치 대상으로 전락된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외피적으로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이 나라가 민주주의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시민을 완전하게 배제하고 있다는 지점에 존재한다. 이 나라는 시민의 권리 실현을 위하여 각 분야에 있어 국가 운영의 권력을 시민에게 한 치도 부여하지 않고 오로지 권력층이 독점하면서 시민들의 참여를 철저하게 봉쇄하고 배제함으로써 결국 시민을 들러리로 세운 ‘허구적 민주주의’이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는 오직 ‘국가신민(國家臣民)’으로서의 ‘국민’만 존재해왔을 뿐 ‘시민’은 줄곧 부재 상태, 몰인식의 대상이었다. ‘시민(citizen)’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절대 왕정을 타파하는 과정에서 무능하고 부패한 절대 권력에 맞서는 ‘자유인의 정치적 실존 방식’으로 형상화되었다. 이렇게 ‘시민’이란 ‘국가 또는 사회의 능동적 구성자’ 또는 ‘국가 또는 사회를 만드는 개인들’로서의 ‘시민’의 참여는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결정 과정에서 보편적인 수단이 되었고 민주적 행정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되었다.

민주주의란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시민들이 단순한 참여의 범주를 넘어서 자신을 지배하는 지배자를 통제, 지배할 수 있다는 것, 즉, 어떠한 권력 행위에 대하여 시민들이 감시하고 평가하며 그에 상응하는 판단과 행동을 내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기본과 핵심은 국가 운영 체계에 대한 시민의 통제이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미국의 카운티(county)에서는 그 지역의 시장을 비롯하여 보안관, 판사, 검사장, 감사원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한다. 이러한 제도는 지역자치 전통의 오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처음 미국에 건너간 이주민들은 같이 배를 타고 와 정착한 동료들과 생활의 근거지를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곧 ‘타운(town)’이었다. 인구가 약 2천 내지 3천 명에 이르렀던 타운에서 주민과 밀접한 업무는 자신들의 손에 의하여 마을집회(town-meeting)에서 직접결정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주민들이 직접 처리할 수 없는 업무는 마을에서 선출된 사람들에 의하여 처리되었는데, 그들은 주민들이 위임한 실무적인 일만 처리하였을 뿐, 공적인 일에 대한 판단은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결정하였다. 타운에는 주요 행정기능을 수행하는 다수의 관리들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마을집회에서 직접 선출되었고 그 공적 업무에 충실하지 못하면 책임이 뒤따랐다. 이러한 주민 자치제도는 특히 뉴잉글랜드(New England)에서 1650년에 확고하게 정착되었고, 타운의 독립성 역시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았다.

기소는 민간인들로 구성되는 대배심(Grand Jury)이 결정한다. 시민들은 대배심, 혹은 기소를 하지 않는 검사에 대한 직무집행명령제도(mandamus)를 통하여 검찰의 기소권을 제한하는 한편 기소배심과 양형기준법 및 삼진아웃법 등을 통하여 법원을 견제한다.

영국은 2002년 제정된 경찰개혁법에 근거해 2004년부터 경찰비리민원조사위원회(IPCC)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수백 명으로 구성된 이 독립적 경찰감시기구에는 의장과 위원에 경찰경력이 있는 인사를 철저히 배제해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직권으로 경찰의 위법행위를 조사할 수 있고, 조사 결과에 따라 경찰관 기소를 검찰총장에게 권고하고 요구할 수 있다. 미국 역시 경찰에 대한 시민감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미국에서 경찰권의 남용을 통제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여 경찰에 대한 민원의 독립적 심사, 정책 검토와 제언, 민원조사의 감시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원전의 안전 문제는 심각하게 중요한 문제이다. 필자는 원전에 반대한다. 그런데 원전이 많기로 유명한 프랑스가 그나마 안전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에는 시민이 참여하고 관리하는 제도가 그 주요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프랑스에는 ‘환경리스크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 제도의 핵심은 정부, 관료, 기업, 과학자, 언론, 일반시민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 이해를 깊게 한다는 점이다. 이익집단이나 전문가만의 참여로는 좁은 시야에 갇히기 때문에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시민들의 참여를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시스템이다. 이렇듯 정보의 공개와 투명성은 원자력 문제에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한편, 미국의 「생활음용수안전법(Safe Drinking Water Act, SDWA)은 식수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때 신속하게 주민에게 통보하도록 하고, 수질과 수원 관련 정보를 주민에게 매년 반드시 제공하며 아울러 매년 식수안전 기준을 준수하는 식수 시스템에 대하여 연도별 종합보고를 대중에게 발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수원(水源) 평가계획 제정 및 음용수 공급시스템 개선 기금 운용 계획 수립, 관련 업무 근무자 인증계획 등에 반드시 참여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저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국민들이 참여하여 투표하는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리고 정당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 사회를 무조건 민주주의 사회라고 칭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단지 외형상의, 형식적인 민주주의일 뿐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란 시민들이 자신을 지배하는 모든 지배자를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제1조에서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어떠한 권력자든 그 어느 국가기관이든 시민들에 의해 감시받고 통제될 수 있는 시스템,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끝〉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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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fox4608님의 댓글

멋대로 굴리니

세금을 내지 말든가 해야 함..

축하합니다. 첫댓글 포인트 1GOLD를 획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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