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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물가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이유에 대한 몇 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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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일부터, 9월 12일까지 4박5일간 대만에 여행 다녀오면서, 느낀 것과 인터넷 검색한 것을 적어 봅니다.


저는 7,8년 전쯤에 타이베이에 여행 간 적이 있는데, 박물관과 중정기념관 등, 주요 관광지 위주로 며칠 다녀온 것 뿐이고, MRT와 택시를 주로 타고 다녀서, 대만의 실생활 물가를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대만의 고속철(THSR)도 타고, 버스를 주로 타며, 렌트카로 화렌도 갔다 오고, 가오슝, 타이중 등의 도시도 하루씩 들러보면서, 대만 사람들의 실제 생활을 짧게나마 느끼게 되어, 그 중 대만 물가가 싼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대만 물가는, 품목마다 물가수준이 다릅니다. 과일 가격 같은 경우, 야시장에 나온 깎아 놓은 과일 같은 경우, 제 느낌상으로는 우리나라 과일 가격의 50% 수준인 것 같고, 버스비나 고속철 비용 같은 경우, 60~70%, 전자제품 같은 일반 상품(Goods)은 우리나라와 당연히 차이가 없고, 숙박료는 동등하거나 오히려 살짝 더 비싼 경우도 있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어떤 분은, 대만 물가는 우리나라 물가의 80% 수준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80%라고 해도, 싸긴 싼 것이죠. 그래서... 왜 대만이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싼 지, 그에 대해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 봅니다.


첫번째 이유는, 대만 부가가치세가 5%로 우리나라(10%)보다 낮기 때문입니다. 부가가치세 또는 소비세(sales tax)는, 홍콩(소비세 없음)같은 특수한 나라를 제외하면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일반화된 세금입니다. 그런데 나라마다 세율은 다르죠. 우리나라와 일본은 약 10%, 중국이 17%, 미국은 주마다 다른데 캘리포니아주가 8.6%, 유럽 역시 나라마다 다른데 대체로 (일부 품목은 제외되만) 20% 전후의 세율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세입 중 부가가치세가 (연도별로 부침이 있지만) 25% 전후의 비중을 나타냅니다. 비중을 봐서 알 수 있듯이 중요한 세금이죠. 대만은 이 부가가치세를 우리나라의 절반 비율로 걷는 겁니다. 자연히 최종적으로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은 그만큼 낮아집니다.


두번째 이유는, 대만은 유류세가 아예 없거나 또는 매우 세율이 낮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 렌트카로 하루 화렌에 갔다오면서, CPC 주유소에서 우리나라돈 40000원 정도에 해당하는 1000NTD(대만달러) 어치 기름을 넣었는데, 타이베이에 돌아와서 차량을 반납할 때 제 예상보다 많은 기름이 남았더군요. 그래서 대만의 가솔린 가격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우리나라 가솔린 가격의 약 70%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요새 가솔린 1L를 주유하면 대략 1700원 정도일텐데, 그 중 (다른 세금도 있지만) 유류세만 500원 정도나 됩니다. 즉, 유류세만 없어도 1L당 500원의 인하효과가 있게 되고, 워낙 석유가 각종 산업 이곳저곳에 많이 쓰이는 중요자원이라서, 전체적인 물가 수준을 많이 낮추게 됩니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류세를 없애 버린다면, 에너지 절약 정책 방향이 퇴색될 것이고, 아주 커다란 세수 결손을 낳게 되어, 교통시설 개선에도 (재원 부족으로 인해) 차질이 발생하게 될 겁니다.


세번째 이유는, 대만은 1년 내내 고온의 날씨이고, 국토 중앙부 및 동쪽 산맥 일부 지역을 빼고는, 대부분의 농토가 관개가 잘 되어 있고, 도로 등 인프라가 잘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각종 농사의 산출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단, 농가 1가구당 농지규모는 작습니다.) 심지어 벼농사는 연중 3모작을 일반적으로 할 수 있고, 남부지방은 4모작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벼농사가 아닌 다른 일반 작물(과일과 채소) 농사도, 비료만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면 1년에 몇번씩 수확이 가능합니다. 자연히 농산물 관련 물가가 낮아지는 요인이 됩니다.


네번째 이유는, 1인당 GDP에 비해 인건비 수준이 낮습니다. 물론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 대만 사람들 인건비가 낮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비슷한 1인당 GDP를 기록한 한국, 일본에 비해 대만의 인건비 수준이 낮다는 얘기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각종 기사와 유투버 영상에서도 여러번 언급하고 있는 얘기입니다. 이 문제는, 대만의 기업들이 국제분업에서 하청을 많이 맡아서 하는 경제구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청을 많이 하기 때문에, 하청 단가를 높일 가능성이 있는 인건비를 높이기 어려운 것이죠. 다만, 최근에 파운드리 산업의 세계적 '수퍼 을'인 TSMC 같은 기업 및 관련 산업의 인건비(임금)는 워낙 기술력이 높고 이익율이 높아서 예외인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TSMC가 전세계적으로 잘 나가도, 야시장에서 일하는 점원들의 인건비를 올려주지는 않죠. 그래서 사회 전체적으로는 인건비 수준이 낮고, 사람들의 구매력이 낮으니 자연히 물가도 올라가는게 한계가 있는 겁니다.


다섯번째 이유는, 자영업자 비율이 높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사회라고 하고 (자료에 따라 수치는 약간씩 다르지만) 가장 최근자료로는 20.1%라고 하는데, 대만도 거의 비슷한 20%대의 자영업자 비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분야는, 도/소매업, 음식업, 숙박업 이런 곳들입니다. 대만도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결국 많은 자영업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분야에서는 인건비도 올라가기 힘들고, 물건 가격(물가)도 올라가기 힘든 겁니다. 관광가서 많이 가는 야시장의 물가 수준이 낮은 것도, 야시장에서 워낙 자영업자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섯번째 이유는, 대만 사람들이 (좋게 말하면) 겉치레에 관심이 낮다는 문화적 이유도 있습니다. 이번에 관광가서 살짝 놀랐던게, 토요일, 일요일에 야시장에 나와서 돌아 다니거나, 버스에서 본 많은 사람들이, 그냥 반바지 내지 칠부바지를 입은 사람이 많았고, 슬리퍼를 신은 사람도 정말 많더군요. 물론 휴일이니까 그렇게 다닌다고 해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습니다만, 밖에 나갈때 기본적인 옷차림은 다 하고 나가는 저는 익숙해지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성향은 각종 물건과 서비스의 소비 측면에서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외관이 허름한 주택들, 스쿠터/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많은 사람들, 식당에서 합석에 거리낌이 없는 문화, 반찬이 없고, 딱 먹는 주된 음식만 주문해서 먹는 문화, 이런 것들이 물건/서비스 판매자에게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갖추는 것만 요구하게 되고, 결국 물가 수준을 조금씩 낮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물건과 서비스를 고급화하는 것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겠죠.


이상으로 제가 생각하는 대만 물가수준이 낮은 이유를 적어 봤습니다.


"물가가 낮으면 좋은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가가 낮은 만큼 소득수준도 낮을 수 밖에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리고, 첫번째 이유로 부가가치세 세율이 5%로 낮다는 것과, 두번째 이유로 유류세가 없다는 것을 들었는데,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대만의 국세 수입은 (1인당 GDP가 비슷한) 우리나라에 비해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됩니다. 대만 인구가 약 2300만명이고, 우리나라는 약 5100만명 정도이니, 동일한 1인당 GDP라면, 국세 수입은 (인구규모에 비례한) 46% 정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2016년 국세 수입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약 400조에 달하는데, 대만은 약 100조 정도에 그쳤습니다. (출처: 주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재정 및 성과관리 제도, 2018.12.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결국 1인당 세금을 거두는 규모가 우리나라에 비해 약 60% 정도밖에 안된다는 말입니다.


"세금을 적게 거두면 좋은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불필요한 세금을 거두는 것은 나쁜 일이지요. 하지만, 필요한 분야의 세금이라면, 거두어서 요긴하게 쓰는게 맞는 방향입니다. 대만은 우리보다 1인당 세금을 적게 거두기 때문에, 다른 나라 정부가 하는 일을 못하거나 더 적게 합니다. 예를 들어 공공임대 주택이 거의 없어서, 부동산 가격 상승과 주거 비용 상승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고, 중국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국방기술과 국방산업 측면에서 우리나라보다 훨씬 부족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대만을 떠나면서 느낀 타오위안 공항의 규모와, 우리나라 인천 공항의 규모를 비교해 보고, 인천 공항이 바다를 간척해서 만들었을 정도로 큰 규모의 사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국가 재정의 규모에 따라 얼마나 할 수 있는 일의 규모가 달라지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저의 지적 호기심때문에 이것저것 찾아본 결과이고...


그냥 관광객으로 대만에 가서 즐기는 것이라면, 모두 쓸데 없는 얘기들이죠. 그냥 우리는 대만에 가서 각자 나름대로 즐기고 오면 그뿐입니다.


이번에 대만에 여행가서 실감한 것으로, 물가 싸다고 느꼈던 것은, 교통비(버스비, 지하철비, 철도비)와 야시장 물가, 그리고 과일값이었습니다. 모두 관광객들이 소비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죠. 그런 점에서 대만은 관광하며 돌아다니기 참 좋은 나라인게 맞습니다. 다만, 여름에 너무 더워서 오랫동안 밖에 있기 힘들고, 언어의 장벽이 있어서, 단순히 먹고 마시며 돌아다니는 것 이상으로 즐기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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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7

인왕님의 댓글

대만 갔다오셨군요.
士林에서 많이 드시고 오셨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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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첫댓글 포인트 1GOLD를 획득하였습니다.

빛둥님의 댓글의 댓글

감사합니다. 타이중의 이종지에 야시장과, 타이베이의 공관 야시장에 들러서 즐겼습니다. 마침 제가 묵던 숙소 부근의 야시장들이라서요.

타이완에 가보니, 고정된 야시장뿐 아니라, 대만 프로야구 경기하는 야구장 앞의 공간도, 마치 야시장처럼 다양한 음식을 팔면서 운영하더군요.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야구장 2곳(타이중 인터콘티넨탈 야구장, 타이베이 티안무 야구장)을 들렀는데, 작은 야시장도 같이 방문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냥해봐님의 댓글

한국은 중간 유통업자들이 다 쳐 올려논 경우죠
세금같은 경우도 그 투명성이 항상 의심되니
조금 줄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됨

짤몬님의 댓글

HD116658님의 댓글

오, 글 잘 쓰십니다.
부럽습니다.

천풍마이님의 댓글

세금이 적어야 좋은 나라인건 절대 아니죠이모티콘

달리다가님의 댓글

긴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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