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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고통스런 시인의 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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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문학평론가·『청색종이』 편집주간
김대현 문학평론가·『청색종이』 편집주간



당신은 가리봉이라는 장소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가난이 누구에게나 가까운 이웃이던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가리봉동은 분명히 우리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였다. 1층 남짓한 공간에 억지로 다락을 놓아 만든 공장에서 낡은 기름냄새를 뒤집어 쓴 어린 소년, 소녀들이 허리를 펴지 못한 채로 수시로 기침을 하며 일하는 모습이 가리봉의 낮의 풍경이었다면, 아무렇게나 뻗은 골목들 사이로 늘어선 주택들과, 야근에 지친 굽은 등들이 줄줄이 좁은 복도를 지나 2평 남짓한 벌집촌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밤의 얼굴이었다. 그 안에서 화장실 하나를 30여 명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밀린 빨래라도 할라치면 물을 쓰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다른 사람과 몸싸움을 벌여야 하던 일상이 바로 가리봉이었다.

분명 우리와 다른 세계였던 가리봉동 삶의 그림

그래서 가리봉은 가지 말아야 할 곳, 혹여 가더라도 오래 머무르지 말아야 할 곳, 머물렀다 하더라도 가급적 그에 대한 기억을 남에게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 곳이었다. “그래 이곳도, 서울/아직 뱉어내지 못한 징그러운 삶이 있는”(「가리봉 엘레지」『반성하다 그만둔 날』)이라는 문장처럼 가리봉은 서울의 한귀퉁이에 서울의 치부로 자리 잡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가린다고 해서 그 많은 가리봉의 삶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도 말하지 않은 그들 삶의 속내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김사이 시집 '가난은 유지되어야 한다' 표지.

김사이 시집 '가난은 유지되어야 한다' 표지.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고 싶은 당신이라면 오늘은 한 번쯤 시집을 펼치는 것도 좋겠다. “잠시 머물다 지나가리라 생각한/가리봉동 구로에서/30년짜리 붙박이장이 되었다”(「돌아보다」)는 김사이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가난은 유지되어야 한다』(아시아 2023) 가 바로 그에 대한 대답이다.

아이는 농사일에 바쁜 부모를 뒤로 홀로 걷는다 (…) 학생들과 응원 나온 부모들이 청군백군 어우러져 울긋불긋 단풍 들었다 아이는 스스로 적막해졌다 (…) 배가 고플 뿐이었다 돗자리 펴고 옹기종기 모여 김밥 먹는 가족들이 파란 하늘에 담겼다 배가 고픈 아이는 스스로 자기의 이름이 불리지 않을 그 가을운동회 풍경의 배경이 되기로 했다 아이의 길에 이변은 없었다 무채색으로 자라난 아이는 보려고 하면 보이고 들으려고 하면 들리는 멀지 않은 곳에 그늘의 배경이 되었다 (「가을운동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어떤 사람이 가리봉으로 오는가이다. 그리고 이 시에 하나의 전범이 있다. 가을운동회는 “돗자리 펴고 옹기종기 김밥 먹는 가족들”의 풍경으로 가득찬 마을 잔치이다. 하지만 모든 잔치가 그렇듯 누군가는 잔치를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잔치에도 쉬지 못하는 부모를 가진 아이는 홀로 운동회에 참석한다. 그래서 아이는 풍경의 일원이 되지 못하고 “풍경의 배경”이 된다.

무채색으로 자라나 그늘의 배경이 될 가리봉동 아이

아이는 자라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색을 숨기는 것에 익숙해진 아이는 성장기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이변’ 없이 ‘무채색으로 자라’난다. 이후 누구의 눈에도 들지 못한 아이는 ‘보려고 하면 보이고 들으려고 하면 들리는’, 하지만 모두가 애써 보려하지 않고 듣지 않으려 하는 곳에 자신의 몸을 의탁하고 ‘그늘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 끊이지 않았던 노동의 일상 평생을 일하는 데 부린 몸은 하나둘 어긋나며 밤낮으로 흘렸던 땀이 메말랐다 충실했던 고독은 깊어졌다 남들은 일하는데 놀고 있어서 미안하다고 죽으면 썩을 몸뚱이 놀리면 뭐 하겠냐고 징글징글할 법도 한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오늘이 죄스럽다는 입버릇 서늘한 그 무엇이 가난의 밑바닥에 흐르는 원죄처럼 위험하게 들러붙는다 노동에 잠식당한 노동 죽어야 끝내는 노동 (…) (「몸의 기억」)

그럼 가리봉으로 온 그들은 이제 무엇을 하는가? 노동이다. ‘밤낮으로 흘렸던 땀’으로 ‘맥박이 흐릿’해질 때까지 이어지는 노동. 그리하여 노동이 자신의 삶을 훼손하는 것을 알면서도 수행해야 하는 노동, 노동 사이에 노는 것이 있다는 세간의 상식을 알지 못하는 노동, 이 정도면 ‘징글징글 할 법도 한데’ 노동을 하지 않는 ‘오늘이 죄스럽다는’ 노동, 온통 ‘노동에 잠식되어’ 노동 바깥의 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노동, 이렇게 숨막힐 듯 이어지는 노동으로 점철된 삶이 바로 가리봉의 일상이다. 그러다 “지하 수로에서 작업하다 빨려들고/흔들리는 비게에서 작업하다 추락하”(「간극」)는 것처럼 그들의 노동은 살아서는 결코 끝나지 않는, ‘죽어야 끝내는 노동’이다

고무줄 같은 해고

일회용품과 닮았다

내가 흘린 성실한 땀은 흔적도 없고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

어디로 흘러가고 무엇에 닿아 있는지

나의 불안을 보살핀 일회용 마스크

쓰고 버린 마스크가 아무 데나 널브러졌다

마스크 끈에 다리 말린 새가 속속 죽는다

나는 살고 너는 죽는다

버린 것들이 돌아온다

버려진 것들에게

내가 버려진다 (「역공」)

늙고 버려지거나 죽고 버려지는 ‘일회용품’ 노동

 
외국인 노동자 단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취를 감춰 손이 모자라게 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중국인 집단 거주지역의 한 수퍼마켓 업주와 인근 업주들이 종업원을 구하는 방을 붙여놓은 채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고 있다. 2003.11.20. 연합뉴스 자료사진

외국인 노동자 단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취를 감춰 손이 모자라게 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중국인 집단 거주지역의 한 수퍼마켓 업주와 인근 업주들이 종업원을 구하는 방을 붙여놓은 채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고 있다. 2003.11.20.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시 문제는 그들의 노동이 받는 취급이다. 누군가의 헌신이 있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응답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은 그 치열함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존중도 받지 못한다. “너에게 소속되기 위해 생을 걸지만/너에게 버려지는 건 한순간이었다”(「퇴근에서 출근사이」) 는 진술처럼 그들은 자신의 삶을 걸고 회사에 헌신하지만 회사는 별다른 기준 없이 ‘고무줄 같은 해고’를 통해 그들의 노동을 아무렇게나 대체한다.

그들의 삶이 이토록 쉽사리 대체되는 까닭은 무얼까? 이유는 어렵지 않다. 풍경의 배경에 ‘무채색’으로 처리된 그들의 삶처럼 그들의 노동 또한 그들과 닮은 또 다른 무채색으로 대체되어도 무방한 것이다. 그들의 삶은 언제 쓰다 버려도 무방한 ‘일회용품’과 다르지 않다. 무채색들이 서로 연대하지 못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대 떠난 자리에 내가 투입”(「그만 퇴직하세요」) 되는 것처럼 누군가가 ‘버려’질 때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노동은 “늙고 버려지거나 죽고 버려지거나/잊고 잊히고 사과도 반성도 없이 잊히고 잊”(「편리를 사다」)힌다.

정규직이 아니어도 좋다

계약직이어도 좋다

단기 알바라도 좋다

병시중이 절실한 식구가 있는데

아이를 홀도 두고 일하러 갈 수가 없는데

어정쩡하게 가난해서

학자금 보조도 청년주택자금 지원도

자격이 안 되는 너라는 시간은

산소호흡기 낀 가난이라고 증명해야

다음 너를 대출받는

가난은 자본의 밑천

그러니까 가난은 유지되어야 한다

-「계속, 다음」부분

공생(共生)만이 끝낼 수 있는 민중 시인의 노동

여기서 의문을 품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 아니냐고. 구로공단의 이름이 구로디지털단지가 되고 벌집이 오피스텔로 변신하는 시기에 가리봉의 삶도 이전과 다르게 변하지 않았겠냐고. 그렇게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이 보는 것은 그러한 구체적인 삶의 단편이 아니다. 어떤 그림이라도 전경이 그려지는 순간 배경 또한 어쩔 수 없이 그려지기 마련이다. 자본의 그림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가난의 풍경 또한 준비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편리를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동은 필연적이다. 강남이 있기 위해서는 가리봉이 있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난은 자본의 밑천”이다. “그러니까 가난은 유지되어야 한다.” 가리봉이 사라진다면 또 다른 이름을 가진 가리봉이 분명히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김사이의 시는 ‘가리봉’이라는 공간적 표상을 배경으로 ‘그늘의 배경’이 된 삶들을 다루고 있다. 민중과 노동이라는 수식이 어느 새 낡은 것의 대표가 된 시기에 김사이의 시는 여전히 민중과 노동의 편에서 “편파적으로 늙”(「갱년기」)어가며, 우리가 보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는 장소에 대해 끈질기게 말하고 있다. 시인의 일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시인에게 이 일은 우리 모두가 “공사(共死) 하지 않고 공생(共生)”(「고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끝내는 노동’인지도 모른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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