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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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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권리’를 구분할 줄 모르는 오만

김태현 변호사김태현 변호사

전공의들의 집단 파업 상태가 끝날 기미를 안 보인다. 매일 뉴스를 틀 때마다 나의 가족·친지 중에 아픈 사람이 없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2000년도 초에 사법시험 폐지·로스쿨 도입·변호사 증원으로 이어진 변호사 직역에서의 지각변동에 대한 기억이 몇 번이고 소환된다. “아니, 변호사들은 그때 가만히 있었는데 의사들은 왜 저러는 거야?”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런 질문을 던지니 그 이유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글로 한번 써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은 무슨~

지난 4일 세계의사회(WMA)의 회장인 루자인 알 코드마니의 성명 발표가 있었다. 한국 정부의 조치가 의사들에 대한 ‘잠재적 인권 침해(potential violation of human right)’라며 한국 의사들과 연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그녀는 쿠웨이트 출신이다. 쿠웨이트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지만 그녀가 만약 ‘권리’나 ‘인권’의 개념에 대해 어려서부터 충실한 교육을 받아온 서구권 출신이었다면 이런 사안에 ‘인권’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갖다 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인권이라는 단어를 여기저기 남발하여 그 단어의 당위적이고 절대적인 뉘앙스를 폄훼하는 행위를 지극히 꺼린다.

대한민국 의사들의 인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제법상·헌법상 누릴 수 있는 만큼 잘 보장되고 있다. 정작 이번 사태에서 ‘인권’이라는 단어가 사용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중증·위급 환자들의 ‘인권’이다. 그런 측면에서 파업 중인 의사들은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기보다는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자들에 가깝다.

 

전공의 집단이탈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학생회관에 가운과 의사국가시험 서적이 버려져있다. 2024.3.5 연합뉴스전공의 집단이탈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학생회관에 가운과 의사국가시험 서적이 버려져있다. 2024.3.5 연합뉴스

권리·기대·반사적 이익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데 의사들은 왜 반발할까? 그들의 (어떤) ‘권리’가 침해당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파업에 동참한 전공의 아무나 붙들고 한번 ‘구체적으로 당신의 어떤 권리가 침해당했습니까?’라고 물어보라. 우습게도 그들은 뭐라 딱히 대답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떠한 권리도 침해당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들과 의사들의 대응방식이 다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변호사들은 변호사 숫자를 매년 1000명, 2000명씩 확대한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20여 년 전 변호사 수를 늘리고자 하는 정부 정책이 발표되고도 거의 무대응에 가까울 정도로 침묵할 수밖에.

의사들도 알아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로 그들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만 분노를 가라앉히고 그 좋다는 머리로 5분만 냉철하게 생각해 보라. 세상 그 어떤 직업에도 ‘정원수를 고정시켜 평균 연봉과 기득권을 보장받을 권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변호사들도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 당연히 변호사 자격을 소지하고 향후 벌어들이게 될 수입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대개 선배 변호사들이 지난 세월 얼마를 벌어왔는지를 기준으로 형성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기대’인 것이지 결코 ‘권리’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회는 변화하고, 제도는 바뀐다. 어떤 직업을 가지기 위해 준비하는 자가 향후 자신이 가지게 될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대한 ‘기대’는 이미 법률상·계약상의 권리로 확정된 근로조건의 변경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의사들은 이 ‘기대’와 ‘권리’를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변호사나 의사 같은 일부 전문직종들은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그 숫자와 자격 요건을 통제한다. 그것은 국가와 국민 전체의 권익을 위한 것이지, 결코 그 직종에 속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특권’을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물론 국가가 너무 급격하게 숫자를 늘리고 자격 요건을 완화한다면 그 직업군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하락할 위험성은 존재하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해당 직업군의 수준 유지는 또 다른 정책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의사들이 고액연봉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그 연봉을 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의사 자격과 숫자를 엄격히 통제하는 국가적 제도 때문이다. 법률 용어로는 ‘반사적 이익’이라 부른다. 그들의 기득권은 제도에 따른 ‘반사적 이익’이기 때문에 제도가 바뀌면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는 것이고, 또 국가는 제도적 목적에 따라 반드시 그것을 변경할 수 있어야만 한다.

 

3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옆 여의대로 인근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3.3 연합뉴스3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옆 여의대로 인근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3.3 연합뉴스

왜 그들만 착각에 빠지는가

의사들은 왜 ‘기대’를 ‘권리’와 혼동하는 걸까? 근본적으로는 의사라는 직업을 다른 직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그래서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자신들은 다른 국민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그런 ‘소수에게만 보장된 본질적으로 다른 권리’를 ‘특권’이라고 부른다. 또 한 가지 궁금증이 머리를 치켜든다. 그들의 이런 지독한 특권 의식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문득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저서가 떠오른다. 샌델의 표현을 빌어 설명해보자면,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엘리트 계층인 의사 집단은 자신들이 누려온 모든 것들이 오롯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성취한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의사가 되기까지 이루어낸 그 모든 것들의 적지 않은 부분이 행운에 의존한 것이었고, 의사가 된 이후 누리는 모든 것들은 국가가 국민 보건이라는 큰 제도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의 덕이었다.

운 좋게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나고 자라, 우연히도 대한민국의 공교육 시스템이 찰떡같이 그들의 뇌 구조와 맞아떨어졌고, 또 어쩌다 보니 그들의 조국은 의료보험 체계가 매우 잘 갖추어져 있었으며 OECD 국가 중 국민 평균 연봉에 비해 의사의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이 모든 우연적·환경적 요소들을 배제한 채 자신들이 누릴 것으로 ‘기대’하는 모든 것들이 오롯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일구어낸 일종의 ‘권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만 때문일까 아니면 인문학적 교양의 부족 때문일까?

대한민국은 국민 대다수가 의료보험에 가입하여 매달 준조세에 가까운 보험료를 내면서 의사집단을 떠받치고 있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의사들이 자신들의 권리 아닌 권리가 침해당한다고 생떼를 쓰며 환자들을 내팽개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현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이 어딘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조금 더 근본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공교육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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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헬로가영님의 댓글

글은 이렇게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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