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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장. 숫자는 이렇게 우리 현실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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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원짜리 단감 세트가 10개 팔리면 GDP는 5만원이 오른다. 그 단감 세트가 1만원으로 값이 올라 5개가 팔려도 GDP는 똑같이 5만원이 오른다. 그러나 값이 올라 단감을 먹지 못한 5 가족은 GDP가 말해주지 않는다. 숫자는 이렇게 현실을 가린다... 


대통령이라면 그걸 보는 마음의 눈이 있어야겠구나. 기자들이 모두 기사를 이렇게 쓰면 내일은 우리가 오늘과 다른 살 만한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다.


김원장

45분  · 마트에서 단감 6개에 1만 원이다. 

방콕을 다녀왔더니 가격이 두 배가 됐다. 흔히 ‘100% 인상됐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단감을 사려다 얼마나 주저하는지 그 마음을 숫자로 나타낼 방법은 없다. 5천 원이였던 단감 세트가 10개가 팔려 5만 원의 매출이 발생했다면 GDP는 5만 원이 오른다. 그런데 가격이 올라 1만 원이 된 단감 세트는 5개만 팔려도 명목GDP는 역시 5만 원이 오른다. 


지난해에 비해 5명은 단감을 먹지 못했는데 우리 명목GDP는 변하는 게 없다. 숫자는 이렇게 우리 현실을 가린다.


인상된 5천원은 사람들 마다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은 정률세라기보다 일종의 누진세다. 가난하면 더 크게 오른다. 우리는 그 차이도 계산할 수 없다. 단감을 들었다가 놓은 사람의 마음을 계산할 수 없다. 오직 ‘가격이 100% 인상됐다’라고 쓸 뿐이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둘 선물상자를 손에 쥐고 있었다. 어떤 이에게는 손에 선물가득 즐거운 설 명절이지만 어떤 이들은 명절이 부질없다. 명절이 부질없는 사람들의 특징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임에도 고향에도 성당 미사에서도 조용히 사라진다. 사라지는 사람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이 지하철에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한숨만 모아 터빈을 돌려도 원자로 하나는 만들까 싶다. (통계청은 업종별 자영업자의 한숨 배출량을 가계동향조사에 반영하라!) 


외환위기기 찾아왔던 지난 98년, 나라 경제가 망한 것 같았지만 성장률이 표현하는 그 해의 고통은 겨우 ‘–5.1%’이다. 온 국민이 느꼈던 해고의 공포. 회사 문 닫으며 제일은행 직원들이 흘린 눈물도 다 성장률 ‘–5.1%’라는 숫자 하나에 정리된다. 숫자는 남의 인생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 고모가 돌아가시고 눈이 안보여 수술을 한 뒤 빈집에서 혼밥을 드시는 84살의 고모부는 이번 설에 뭘 하실까. 고모부가 혼자 차려 드시는 밥상도 아들이 쥐어드린 용돈도 고모부가 성당에 내는 헌금도 모두 GDP에 잡히지 않는다. 소득이 없고 이렇다 할 생산 활동이 없는 고모부는 이미 우리 경제에서 그림자같은 존재다. 


숫자가 마음을 측정하지 못하니 동일한 화폐가치가 사람마다 얼마나 다른 가치를 지니는지 알 수 없다. 고모부가 가진 10만원의 무게와 어느 사모펀드 회장님이 가진 10만 원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한다. 그저 똑같은 10만 원이다. 그 사모펀드 회장님의 자산은 12조 원이다. 고모부가 한 달에 100만원씩 1백만 년을 저축하면 12조 원을 모을 수 있다. 


두 사람의 10만원이 똑같으니 신호위반을 해도 범칙금은 똑같이 낸다. 우리는 10만원의 범칙금 고지서가 날아왔을 때 두 사람이 내쉬는 한숨의 차이를 측정하지 못하니까. 그렇게 공평하게(?) 내는 교통 범칙금은 해마다 빠르게 늘어 이제 연 1조 원을 넘는다. 

  

며칠전 백화점에 갔다가 방콕의 유명백화점에 있었던 그 시계브랜드를 봤다. 개당 수억 원 씩 하는 시계를 구입하고 나오는 사람들. 많은 고민을 하고 샀겠지. 최소한 내가 단감을 살 때 보다는 더 고민했을거다. 1억 원은 누군가에게는 딸에게 주는 손목 시계의 값이지만 누군가는 보이스피싱을 당해 한강으로 향하는 목숨같은 값이다. 중력이 다른 별에 사는 사람들의 몸무게를 비교하는 게 의미 없듯이 1억 원은 사람마다 각자의 무게를 지닌다. 자꾸 이 생각을 하면 경제 기사를 쓸 때 머리가 너무 복잡해진다.


성숙하다는 것은 내 주변의 누군가 느끼는 심연의 슬픔을 공감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 기사는 이것을 수치로 표현할 수 없다. 경제 기사에 등장하는 1억 원은 금방 형해화되서 그저 숫자의 의미만 남는다. 생명값이나 시계값이나 그냥 1억 원이다. 그러니 영끌로 1억원 대출을 받아 시흥에 남양주에 평택에 아파트를 산 젊은 부부가 집값이 1억원 내렸을 때의 슬픔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들에게 1억원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값이다.


오늘도 퇴근길 지하철에는 1억 원을 저축하기위해 동물원을 뛰쳐나온 얼룩말처럼 용감하게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너도 할 수 있을거야’라는 무례한 조언을 이겨내며 또 내일을 맞이한다. 그 1억원을 저축하기기 얼마나 어려운지 경제학은 측정하지 못한다


그러니 또 올해 2.2% 성장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1억 원이란 무엇이고 2.2% 성장이란 무엇일까. 올해는 단감 가격이 좀 내리려나. 집사람한테 5억 7천만 원만 빌려달라고 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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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는 숫자로 표현하지 못하는 고통을 헤아려야

# 언론도, 기술도, 학계도.. 공동체에 미치는 모든 분야의 기본 자세가 그래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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