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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넷플릭스 6부작 드라마 ‘선산’ 리뷰

오동진 영화 평론가오동진 영화 평론가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세상에 주술과 무속이 횡행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영화가 이를 반영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늘 시대와 세상을 예지(叡智)해 내는 경향성을 보인다. 아니면 실제 사건 후에 그걸 특정한 서사, 드라마로 엮어 내는 걸 좋아한다. 한국에서 최근 들어 다시 오컬트 무비(occult movie)를 표방한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선산’이 그 스타트를 끊었다. 넷플릭스 6부작 드라마로 공개 초기인 지난 1월 말 글로벌 인기 순위 4위, 비영어권 1위까지 올랐다. 극장용 영화로는 ‘파묘(破墓)’가 곧 개봉될 예정이지만 2월 15일에 시작될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서의 공개를 먼저 준비 중이어서 국내에는 아직 전혀 소개되지 않은 상태다.

 

   '선산' 포스터   '선산' 포스터

극도로 어지러운 세상에 오싹한 기시감을 느끼는 영화

오컬트 무비란 일종의 심령 영화를 말한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는 내용의 작품들이다. 세상에 어둡고 끔찍한 일이 생기거나 믿기지 않은 일이 벌어질 분위기, 사회가 극도로 어지러울 때 오컬트 영화는 인기를 모은다. 옛날 영화로는 ‘엑소시스트’같은 구마(驅魔)영화들이 있다. 요즘 영화로는 ‘컨쥬어링’처럼 심령을 연구하는 내용의 작품들이 해당한다. 국내 작품으로는 ‘곡성’이나 ‘사바하’같은, 설명하기 힘든 내용의 미스터리 영화들이 여기에 속한다. 2015년작 ‘곡성’에서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그것도 기이한 방식으로 죽어 나간다. 영화 ‘곡성’이 나오기 전 세월호 사건이 터졌고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오싹한 기시감을 느껴야 했다. 오컬트 영화들은 이처럼, 당연히 공포와 미스터리를 동반한다. 일본영화 ‘링’을 생각하면 된다.

‘선산’은 한 지방 소도시(작품 속에서는 슬쩍 TK, 곧 대구 옆 경산시라는 게 스쳐 지나가듯이 나오지만 의도적으로 공간을 모호하게 뭉개고 간다. 극중 인물들은 연출의 의도인 듯 경북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외곽의 선산(先山)때문에 빚어지는 참극을 다룬다. 6회의 에피소드를 경유하면서 사람 셋이 죽어 나간다. 첫 죽음과 두번 째, 세번 째의 죽음은 어찌 보면 약간은 별개의 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시작과 동기는 씨줄 날줄로 연결돼 있다. 땅이 빚은 아수라의 욕망 때문이다.

한국은 늘 땅과 부동산, 개발이 문제이다. 욕망이 모이거나 교차하는 곳은 혼란의 도가니가 된다. 드라마 ‘선산’이 표방하는 것은 살인극이 만들어 내는 공포의 심리나 미스터리가 아니다. 과도한 욕망 때문에 생겨나는 사회적 살의(殺意), 정치적 아나키(anarchy), 곧 무정부의 문제를 지목한다. 드라마 안이나 밖에서나 선산이라는 유형물질의 땅은 가족 간, 커뮤니티 간에 균열과 갈등, 분쟁, 죽고 죽이(ㄹ만큼 미워하게 되)는 싸움이 벌어지게 만든다. ‘선산’은 그런 얘기의 극단을 보여준다.

 

 '선산'의 한 장면 '선산'의 한 장면

땅 둘러싼 갈등, 분쟁, 끝내 죽고 죽이는 극단의 이야기

주인공 윤서하(김현주)는 지방대학에서 미술전공 학과의 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마음 속에 늘 팽팽하게 신경줄을 댕기고 살아간다. 자신의 앞날을 쥐고 있는 교수(정인기)의 저서를 대필하면서까지 전임교수직을 따내려고 애쓰지만 늘 여의치가 않다. 대학에는 이제 자리가 없다. 교수 임용은 대개 비리와 부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조리한 인맥과 학맥 외에는 이제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윤서하가 딱 그런 처지이다. 게다가 필라테스 강사로 살아가는, 멀끔하게 생긴 남편 재석(박성훈)은 어린 여성들과 혼외정사를 하며 다닌다. 윤서하는 흥신소 사람(현봉식)을 고용해 남편의 뒤를 캔다. 이후 남편 재석과 흥신소 사람 둘 다 살해 당한다. 두번 째와 세번 째 살인이다. 윤서하도 죽음의 위기를 몇 번 넘긴다. 그러나 오히려 주요 용의자 선상에 오른다.

모든 게 다 선산 때문이다. 윤서하는 학교와 부부 간에 벌어지는 ‘기막힌 일’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 경찰의 전화를 받는다. 살면서 한번도 만나지 않은 직계 삼촌 윤명길이 돌연사를 했고 (추후 독극물 탈륨을 이용한 살인으로 밝혀진다) 그의 앞에 선산이 유산으로 놓여 있는데 윤서하가 유일한 상속자라는 것이다. 시가 15억 원 이상의 이 상속 자산은 곧바로 윤서하 인생의 한 가운데로 진입해 들어온다.

 

'선산'의 한 장면'선산'의 한 장면

선산 지역의 읍내 마을은 골프장 개발로 들썩이는 중이다. 아무리, 전혀 슬플 일 없는 삼촌의 죽음이라지만 마을회관에 마련된 장례식장 분위기는 이상하게도 잔치 분위기이다. 형사 최성준(박희순)은 노인 윤명길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마을을 탐문하던 중 그의 죽음에 범상치 않은 이유가 있음을 직감한다. 윤명길의 선산은 골프장 개발의 한 가운데 ‘알박기’를 하며 매각을 하지 않은 유일한 땅이었기 때문이다. 윤 노인은 마을 모두의 미움을 받고 있던 터이다. 윤명길이 죽자, 자신도 그의 혈육 중 하나이며 사실은 윤서하의 숨은 이복동생이라는 김영호(류경수)란 이상성격의 남자가 나타난다. 이 남자, 무속신앙에 빠져 사는 남자이다. 선산을 놓고 가뜩이나 흉흉한 분위기에 빠져 있는 마을은 점점 살기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발생하는 두 건의 살인사건은 윤 노인 사건과의 연결 고리가 잘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앞선 사건은 뒤의 사건 둘을 위한 일종의 맥거핀(macguffin)이다. 가장 중요한 사건이나 이야기인 듯이 보이지만 그건 하나의 눈속임일 수 있으며 뒤에 전개되는 진짜 플롯의 이야기로 사람들을 진입시키기 위한 장치라는 얘기이다. 드라마 ‘선산’의 후반부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휘몰아치게 만든다. 그 부분을 놓고 시청자, 관객들은 논쟁 중이며 그 대척점은 도덕과 부도덕 문제의 경계에 서있다. 스타 감독 연상호(‘부산행’ ‘지옥1,2’ ‘정이’ 등)가 기획하고 그의 조감독 출신인 민홍남 감독이 연출한 이 드라마는 어쩔 수 없이 ‘연상호표’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연상호식’이라고 얘기할 때는 금기를 깨는 쪽, 상상이 불허되지 않는 쪽을 거론할 때 쓰이고 있다. ‘선산’은 우리 사회가 쉬쉬해 왔던 혈연의 금기를 깨뜨린다.

 

'선산'의 한 장면'선산'의 한 장면

자기 영역 지키기 위해 악을 마다않는 주인공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무속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짙어진다. 미스터리한 살인사건 뒤에는 이성이 접근할 수 없는 악귀와 악령의 흔적이 느껴진다. 이복동생이라는 김영호는 처음 보는 누나의 아파트 문에 닭을 죽인 피로 삼재 부적을 휘갈기고 도망간다. 윤서하는 김영호가 결국 선산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죽일 속셈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윤서하는 이제 몇 개의 국면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①선산을 놓고 마을사람들 혹은 김영호와의 문제를 풀어야 하며 ②경찰에게 자신의 살인사건 무죄를 입증해야 하며 ③학교에서는 자신을 이용하고 성추행 하려는 지도교수와, 교내에 가짜 뉴스를 퍼뜨리면서까지 자신의 전임 자리를 탈취해 간 간악한 여교수(최유화)와 심리싸움을 벌여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처럼 이 드라마의 주인공 윤서하는 이중 삼중의 중층 모순에 짓눌려 살아간다. 윤서하는 이 복합골절 같은 문제점 모두를 풀 수 있는 약한 고리가 결국 선산에 있음을 알게 된다. 저 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선산'의 한 장면'선산'의 한 장면

드라마 ‘선산’에서 가장 좋은 장면은 주인공 윤서하가 자신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인간)을 죽이겠다고 결심하는 대목이다. 윤서하는 죽은 흥신소 직원의 선배라고 얘기하는 조폭 남자(유승목)에게 김영호를 잘 구슬려 선산 포기각서만 받아 달라고 하지만 그때의 그 표정에는 ‘그를 없애도 좋다’는 식의 느낌이 담겨진다. 이때의 윤서하는 물적 욕망에 사로잡혀서 그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자기방어의 심리가 더 강해 보이는데 그건 내 삶의 영역을 지키겠다는 동물적 본능 때문이다. 자기방어권의 한 측면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모든 일은 선을 넘는 순간 악이 된다.

드라마 ‘선산’의 윤서하는, 우리 모두가 선과 악의 경계를 수도 없이 오가며 살아가는데,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선 쪽에 기대 살기 보다는 하루하루 그리고 매일 매일 악마적 생각, 곧 악귀에 사로 잡혀 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윤서하는 차 안에서 남편과 싸우고 그를 마을 어귀 논가에 내팽개치고 가면서 그가 죽기를 바라고, 그를 죽여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녀는 형사의 추궁에 자신있고 당당한 표정을 넘어 오히려 소리를 지르고 윽박지르는 태도를 취한다. 윤서하는 이 드라마에서 선한 여자가 아니다. 그 부분이야 말로 이 드라마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좋은 부분이다. 인간은 땅과 재물때문에 또는 그 이상의 정신적 심리적인 무엇 때문에 충분히 악마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윤서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삶을 잃고 결국 소유마저 잃는 우리 시대 이야기

드라마 ‘선산’은 물질적 재화, 곧 땅과 개발이라는 ‘한 방의 자본주의’가 삶의 공간을 얼마나 훼손시키고 그 이상으로 정신적 황폐함을 가져 올 수 있는 가를 역설한다. 사회는 기계적 사회과학이론으로는 결코 바뀌지 않는데, 그 사회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정신과 심리가 교정되거나 치유되지 못하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 이론은 지크문드 프로이드의 심리학이 뒷받침 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 에리히 프롬의 이데올로기이자 그의 대표작 『소유냐 삶이냐』의 핵심 이론이다. ‘선산’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범인, 그리고 사건에 휘둘리면서 자신 역시 점점 극악하게 변해가는 주인공 윤서하, 비정상의 무속 신앙이 지배하는 ‘마을=우리 사회’는 결국 삶을 잃고 소유만 하는, 아니 결국엔 소유마저 상실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선산’이 얘기하려고 하는 부분은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진다. 드라마 ‘선산’이 나름 역작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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