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종전선언' 추진에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건..유엔사 해체

北 외에 중·러도 "전쟁 끝났는데 왜 있냐" 문제 제기 가능성
전문가 "정전협정 당사자..종전선언에 영향받지 않게 해야"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노민호 기자 = 우리 정부가 전력을 다해 추진 중인 한국전쟁(6·25전쟁)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 조야의 우려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 정부는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남북한과 미국 혹은 중국까지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제안한 뒤 "종전선언은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입구'에 해당하는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며 미국 등 당사국들을 상대로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 내에선 "종전선언 이후 상황에 대한 치밀한 준비 없이 서둘러 '전쟁 종식'을 선언할 경우 상당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전직 당국자와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당장 북한이 종전선언을 빌미로 '주한미군 철수'나 '주한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설령 북한은 가만히 있더라도 "중국이나 러시아가 앞장서 요구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유엔사는 1950년 북한군의 남침에 따른 6·25전쟁 발발을 계기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설치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 사령부로서 전쟁 당시 국군을 비롯한 유엔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땐 유엔사가 북한·중국과 함께 당사자로서 서명했다.

현재도 유엔사는 남북한의 정전협정 이행 여부를 감시·감독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남아 있다.

게다가 유엔사는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발발해 유엔군이 참전하는 경우에 대비해 일본에서 7개의 후방기지를 운용하고 있다.

주일미군이 관리를 담당하는 이들 기지는 현재 안보리 결의에 따른 대북제재 위반 행위, 즉 북한 선박들의 해상 불법 환적 등을 감시·단속활동을 수행하는 다국적군(미국·일본·영국·프랑스·호주·캐나다·뉴질랜드)의 거점으로도 쓰인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유엔사 해체를 요구해왔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사령관을 겸직하고 있기 때문에 '유엔사는 곧 미국의 지휘를 받는 군사기구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북한이 미국애 요구하는 소위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도 연결된다.

이런 가운데 중국 또한 최근 미국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이들 유엔사 후방기지의 존재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상황. 이들 기지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중국 견제·압박 용도로도 사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 정부가 우리 측과 다양한 수준에서 종전선언에 관한 협의를 이어가면서도 선뜻 공개적으로 '종전선언'을 거론하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리 외교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한미외교장관회담 뒤 배포한 자료에서 정의용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종전선언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조기 재가동 방안에 대해 진지한 협의를 했다"고 밝혔으나, 미 국무부의 회담 결과 자료엔 '종전선언' 표현 자체가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는 3일 보도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종전선언) 그 자체는 괜찮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종전선언을 하고 나면 어떻게 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일단 하고 나서 다음을 생각해보잔 태도는 안 된다"고 말했다. 주한미군과 유엔군사령부의 거취, 북한 비핵화 문제를 다루지 않는 종전선언은 '의미가 없다'는 게 그레그 전 대사의 설명이다.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도 최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이 위험한 건 '전쟁이 끝났는데 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 (미국의) 확장억제를 유지하느냐'와 같은 잘못된 인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한국 내 정치상황을 감안할 때 종전선언이 실제로 성사될 경우 그 시점에 따라 '유엔사 해체' '미군 철수' 등의 주장이 재차 표면화되면서 님남갈등을 불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유엔사는 이달 들어 정전협정 이행과 관련한 활동사항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알리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

유엔사는 이달 1일 트위터를 통해 그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상황을 이유로 중단했던 비무장지대(DMZ) 부대 장병 대상 '정전협정 소개교육'을 재개했다고 밝힌 데 이어, 2일엔 정전협정 준수 여부 확인을 위한 현장 점검을 실시한 사실도 사진과 함께 공개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유엔사엔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유엔사는 정전협정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라며 "종전협정에도 '한미동맹이나 유엔사와는 무관하다'는 내용을 명시해 북한이나 중국이 악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미 미국도 아마 같은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