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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아과 의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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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날 


소아응급실로 출근한 첫 날이었다. 


아이가 심폐소생술을 하며 이송 중이라고 했다. 

태어난지 갓 한 달이나 되었을까,

구급대원은 두 손으로 아기를 감싸안고 

양손 엄지로 가슴을 압박하며

다급한 몸짓으로 달려 들어왔지만

나는 아이의 몸을 본 즉시

더 이상의 심폐소생술이 의미 없음을 알았다. 


DOA (Death On Arrival)


너무 늦었다. 


희망을 줄 수 없다. 

내가 살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아기의 몸은 이미 창백하고 푸르고 또 검었다. 

차갑게 시반이 깔린 젖먹이의 몸을 본 적이 있는가. 

아이는 아마도 구급대원이 도착하기 전에

세상을 이미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포기할 수 없다. 

어머니는 내 옷자락을 잡고 울었다. 

살려 달라고. 나의 아기를 돌려달라고. 


가슴이 아팠지만 조심스레 아이의 떠남을 전했다. 

어머니, 너무나 안타깝지만 

이제는.. 아이를 다시 불러 올 수 없어요. 


어머니의 손은 위로 올라와 나의 옷깃을 잡았다. 

여기가 작은 병원이라 네가 못 살리는 거 아니냐고,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빨리 옮겨 달라고. 


어머니는 어디엔가 전화를 하며 소리쳤다. 

여기는 지방 병원이라 실력이 안 돼서 못 살린대,

서울로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해. 


나는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기가 아니라 내가 아니라 

그 어디, 그 누구라도 지금은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을 

더는 할 수 없었다. 

그녀도 아마..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누군가는 그녀가 토해내는 고통을 들어야했고

그 순간 그건 나였다.

그러니 괜찮았다. 

아이가 떠난 것은 슬펐지만

지방병원, 작은병원, 

네가 실력이 없어서라는 말은 아프지 않았다. 

그 날 나의 역할은

그녀가 잡을 옷자락을 걸치고 그녀 앞에 서 있는 것,

그 뿐임을 알았으므로 나는 괜찮았다. 


2. 공동운명체


너희 언제까지 할거야,

너희 닫으면 우리도 감당이 안 돼서 조절을 해야 해.

이번에 또 사람이 나가거든.  


너는 언제 일해,

서로 입원 되는 날을 조율 해야 하지 않을까.

중환자실? 당연히 우리도 안 되지.. 


그 쪽 문 닫았나요,

저희 쪽으로 자꾸 오는데 저희도 소아 못 받거든요. 


이 근처에 아무데도 안 될걸요?

저희 병원 와도 어차피 다 서울경기로 보내요. 

근데 뭐, 되는 데 없겠죠. 


주변의 모든 소아응급실과 소아청소년과 병동,

제법 먼 곳의 병원들로부터

우리 센터의 상황을 묻는 전화를 거의 매일 받는다. 


10년 전, 내가 이 곳에 왔을 때는 

지방 병원이라 못 받는 환자도,

작은 병원이라 못 고칠 병도 없었는데,

심지어 필요한 세부 분과가 없더라도

어떻게든 응급처치를 하고 입원을 시키면

아이를 안정시켜 적절한 곳으로 전원 보내거나

여기서도 충분히 잘 치료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더 많다. 

그리고 그건 정말 지방이어서 그렇다. 

주변이 씨가 말랐거든. 다 똑같은 상황이거든. 

봐야 할 환자도 해야 할 일도 져야 할 책임도 많은데

돌아오는 건 리스크와 민원 뿐이어서. 


나는 이제 지방이라는 말을 뱉으며

종종 아프고, 슬프고, 괴롭다. 


서울로 가셔야 해요 어머니,

지방에는.. 없어요.


3. 협박


일곱 명이 근무하던 센터에 둘만 남았다. 


365일 24시간 불 밝던 소아응급실은 

때로, 아니 종종, 아니 사실은 자주 멈춘다. 


오늘 소아응급실 여나요, 하는 보호자들의 전화는 

하루에 백 통쯤 온다고 하고

소아 환자 이송 받을 수 있나요, 하는 구급대원의 문의는 

하루에 서른 통 정도 걸려온다. 


상황이 허락하는 한 어떻게든 받으려고 하지만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내시경을 꼭 해야 하는데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 

수술이 필요한 병인데 소아는 못 보는 경우도 있다. 

중환자 케어는 언제나 안 된다. 


응급이니까 뭐라도 해 주면 안 되냐지만

오히려 1분 1초가 급할수록

인력 없고 입원 안 되고 손 못 쓸 상황에서

우리 병원을 불필요하게 거치느니

환자의 상태가 안정적일 때 신속히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편이 훨씬 나은 경우도 많다. 


구급대원들도 답답하겠지, 불안하겠지.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니 우리도 최대한 어떻게든 받는다. 

어차피 여기밖에 없는 거 우리도 안다고. 


그래도 말이지,


그래서 이 환자 안 받겠다는거죠? 

그 쪽 이름이 뭐예요?

그 쪽에서 이송 거부해서 못 갔다고 기록하면 돼요? 

운운 하는 건 과연 문의일까 협박일까. 


그럼 못 받을 상황에 와서

중환자실 처치 못 받고 수술 늦어져서 환자 잘못 되면

그 쪽에서 책임지실 건가요 소리가 목젖까지 나온다. 


나의 동료들이 떠난 이유는 

절반이 협박, 절반이 모욕,


즉 개인의 삶을 온전히 장악할 수 있는 크기의 

공포와 자괴감이었다. 


4. 모욕


열었다 닫았다 이 따위로 할 거면 응급실 왜 열어 놨냐,

열 여덟 숫자가 난무하고 애미애비 찾는 욕설이 날아든다. 


수술도 안 되면서 이게 무슨 응급실이냐고

병원이 사기를 쳐서 환자가 헛걸음 했다고,


너희가 어제 문을 닫는 바람에 

우리 애가 어제부터 열이 났는데 진료도 못 보고

오늘 오느라 더 나빠졌는데 어쩔거냐고. 


결국 듣도보도 못한 비속어를 연발하며

내 멱살을 잡으려 드는 아버지에게 

급기야 똑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저희가 열었다 닫았다 해서 그렇게 불편하시면 

그냥 아예 닫을까요?

저희 이제 두 명 남았는데 마저 그만 둬요?

여기 와 있는 애들 보지 말까요?

지금 그게 남아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할 소립니까?

문을 닫고 진료실로 들어 와

키보드 위로 청진기를 집어 던졌다. 

책상 위로 떨어진 건 나의 지난 10년이었다. 


다음엔 뭘 던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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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

헬로가영님의 댓글

에휴

축하합니다. 첫댓글 포인트 1GOLD를 획득하였습니다.

장독대님의 댓글의 댓글

글 뒷부분이 조금 짤려서 다시 채워 넣었어요

원형님의 댓글

전국이 서울이 되면 해결될거예요. 아마 (국짐 생각에)

문재인이 지방 공공의를 만들려고 했더니 2찍 의사들이 반대했어요 않될거예요.

나도 의료사고 피해 가족이지만 (개같은 것들...) 의사들에 대한 존중은 했으면 한다. 그리고 죽으려고 하지 말고 (급히 치료 받아야 하는데 자기가 괜찮다며 나가버리는 경우를 봐서...)

아이유짱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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