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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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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반 눈을 떴다. 토요일이지만, 늦어도 6시 50분까지는 학교에 도착해야만 한다. 다섯 명의 아이들을 인솔해 국립 5.18 민주묘지에 가기 위해서다. 우리를 초청한(?) 국가보훈부에서 픽업을 위해 버스를 보내준다고 했다. 오전 7시까지는 도착해야 한다는 언질을 받은 터다.

다섯 아이들은 '화동' 역할을 맡았다. 기념식 도중 윤석열 대통령과 유족 대표에게 다가가 감사와 위로의 꽃다발을 증정하는 일이다. 쉬는 주말에 참석해야 한다는 게 마뜩잖을 법도 하건만, 국가 주관 행사에 '출연'한다는 설렘으로 들떴다. 다른 때도 아닌 5.18 기념식 아닌가.

6시 30분쯤 도착했더니 두 아이가 먼저 와 있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깔끔한 교복 차림으로, 아침 등굣길의 부스스한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방금 다림질한 듯 블라우스에 날이 서 있었다. 하복에 춘추복까지 가방에 챙겨왔다고 했다. 더 단정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오전 7시까지 도착해야 한다고 강요하다시피 해놓고선, 정작 도착한 뒤에는 찾는 이가 없었다. 잠깐 대기하고 있으라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초여름 땡볕이 직사하는 곳에서 이름이 호명될 때까지 데면데면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른 학교에서 초청된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정각 8시가 되어서야 전체 리허설을 시작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럴 거였으면 8시까지 오라고 했어야 옳았다. 아이들은 달궈진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죽여야 했다. 그렇다고 볼멘소리를 할 수 없었던 건, 우리만 그랬던 게 아니어서다.

말이 좋아 리허설이지, 그냥 줄지어 입장한 뒤 나란히 꽃을 들고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다가가 꽃을 건네면 끝이었다. 복잡한 동선이나 따로 외워야 할 동작도 없었다. 굳이 리허설을 할 필요도 없이, 대기 장소와 함께 이전과 이후의 행사 꼭지만 알려주면 될 일이었다.

더욱 황당한 건, 고작 이걸 위해 평일이었던 전날(16일 금요일) 오후 시간까지 리허설을 위해 아이들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행사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했는데도 막무가내로 국가 행사이니만큼 협조해달라고 요구했다. 국가보훈부와 시교육청이 협의된 사항이라고 명토 박았다.


기념식의 주인공이 더는 유족이 아니었다.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지정된 자리에 앉을 때까지 정치인들 주변은 온갖 사람들로 들끓었다. 유튜버들의 스마트폰 앞에서 스스럼없이 포즈를 취하는 거물 정치인과 그들에게 다가가 눈도장 찍으려는 지방 의회 의원들의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추모식이 아니라, 마치 전당대회장을 방불케 했다.

정치인들의 이름을 연호하고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들의 소란 속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팬덤'의 환호를 앞세운 그들의 이름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죽어간 5.18 영령들의 모습이 겹치는 그로테스크한 순간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유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손바닥만 한 구름마저 걷히고 하늘엔 오직 해뿐이었다. 초여름 땡볕은 차양 종이 모자까지 뚫어낼 기세였다. 기념식장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도 뜨거워져 앉으나 서나 더위에 지치긴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모두 허기가 진 탓인지 아침나절의 더위인데도 견디기 힘들어했다.

아이들은 지금껏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리허설 대기만 하고 있다. 그들도 나처럼 새벽에 일어났을 테니, 본 행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족히 6시간 넘게 끼니를 굶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실 리허설을 시작하기 전에 아침 대용 요깃거리 정도는 마련되어 있을 줄 알았다.

손걸레로 열심히 내빈이 앉을 의자를 닦고 있는 국가보훈부 직원에게 다가가 부러 물었다. 아이들이 배고파하는데 간식이라도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스마트폰에서 무언가를 찾아보더니 그런 계획은 아예 없다고 답했다. 기실 그도 아침을 거른 듯했다.

인솔 교사로서 화가 나 상급자로 보이는 이에게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다. 명색이 정부 기관이 아이들을 휴일 이른 아침에 국가 주관 행사에 동원했다면, 적어도 끼니는 챙겨줘야 마땅하지 않나. 협조 공문에다 학교와 할당 인원수까지 명시해 놓고선, 데려간 그들을 굶기다니...


국민의례와 함께 제44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시작됐다. 유난스러운 분위기 탓인지 객석의 1/3 정도가 비어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추모객보다 국가보훈부 직원과 경찰, 경호원의 숫자가 더 많게 느껴졌다.

대통령의 기념사가 시작되자, 한 시민단체의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라'는 손팻말 시위가 시작됐다. 침묵시위였던 까닭에 '입틀막'은 없었지만, 순식간에 경호원들로 에워싸였다. 그 와중에도 아랑곳없이 기념사를 읽어가는 대통령의 '유체이탈'에 적이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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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2

스테판커리님의 댓글

씨발 두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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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빵빵님의 댓글

하는게 그렇지 뭐 ... 기대할게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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