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자동차를 포함한 여러 연관 산업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각국이 자구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인구 대국인 인도가 그동안 미국, 대만, 일본, 한국 등에 의존해온 반도체 분야를 직접 육성하겠다고 나섰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7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최근 행보를 짚으며 “인도의 반도체 자립 추진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보다 더 영향력이 클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이 가로막힌 상황에서, 미국이 우방국인 인도가 중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도는 13억명에 달하는 인구를 바탕으로 한 거대 소비시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노트북, TV, 가전, 자동차 등 각종 제품의 주요 생산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 초부터 반도체 공급 부족이 인도 경제에도 타격을 입히고 있으며,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국가 경제의 체질 개선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모디 총리가 지난달 미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을 만나는 와중에서도 특히 반도체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의 회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도는 올해 극심한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생산이 큰 폭으로 줄었고, 지난 7월에는 인도 외무부가 미국, 독일, 일본 등지의 외교관들에게 칩 확보를 지시하기도 했다.

인도가 반도체 산업에서 더 자생력을 기르는 또 다른 배경 중 하나는 디지털 전환이 꼽힌다. SCMP는 인도 경제가 디지털 전환을 본격화하면서 국가 인프라의 첨단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는 ‘새로운 시대의 석유’나 마찬가지다. 소비 시장과 인구 등을 감안하면 더이상 디지털 인프라의 핵심인 반도체를 수입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지난 8월에는 인도의 간판 기업인 타타그룹이 반도체 산업 진출을 선언했다. 나타라잔 찬드라세카란 타타손스회장은 최근 열린 인도상공인협회(IMC) 총회에서 “타타그룹은 이미 중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응하기 위해 전자 제조업, 5G 네트워크, 반도체 등 주요 산업으로 전환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타타그룹은 인텔의 최고공급책임자이자 파운드리 서비스 사업부를 이끌고 있는 랜디어 타쿠르 부사장을 타타일렉트로닉스 디렉터로 영입하기도 했다. 타타그룹이 직접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직접적인 이유는 최근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심화되며 자회사 자동차 업체들이 심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다만 반도체 산업의 자본집약적 성격과 안정적인 전력공급 등 고려할 때 인도가 직접 반도체 제조를 위해 뛰어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은 아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인프라를 비롯해 기술력 확보 역시 난제로 꼽힌다. 최악의 경우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고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는 ‘헛수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이미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중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CNBC는 최근 방송에서 “중국은 오랜 기간 반도체에 투자해왔지만 아직도 외국 기술 의존도가 높아 자급자족은 여전히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세계 3대 컨설팅업체 중 하나인 베인앤컴퍼니(B&C)의 피터 핸버리 파트너는 “중국이 반도체 자급자족을 위해 한 걸음 나아갔으나, 보폭은 작은 편”이라며 “구체적으로 지식 재산권, 제조공정, 장비, 원자재들을 해외에서 공급받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고 평가했다.